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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Dec 25. 2018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겪은 아이들 이름 짓기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8

나에겐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다. 첫째인 딸내미 이름은 여진이고, 둘째인 아들내미 이름은 지훈이다. 그런데 둘 다 이름을 짓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먼저 딸내미의 경우, 여진이의 원래 이름은 희라였다. 나는 성명 철학을 전혀 몰랐고 잘 아는 작명소도 없었다. 누군가 이름은 원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지어주시는 거라고 했던 말을 들은 바가 있어서 딸내미가 태어나자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잘 아시는 데가 있다고 하시면서 며칠 후 '희라'라는 이름을 받아 오셨다. 그리고 여진이가 세 돌이 될 때까지 그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께서 갑자기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이유인즉슨 당초 내 이름을 지어주신 대구에서 작명으로 유명한 분이 돌아가신 줄 알고 그분의 제자에게 작명을 부탁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스승 되시는 분이 살아계신 것을 알고 찾아가서 물어보니 그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하셨단다.


나는 어머니께 역시 강한 어조로 말씀을 드렸다. 지금 인간이 우주로 나가는 시대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냐고 반박했다. 그런데 쉽게 정리될 줄 알았던 일이 예사롭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급기야 어머니께서 신경을 너무 쓰신 나머지 속병이 생기셨다.


내가 비록 효자는 못되지만 어머니께서 속병이 생기실 정도시니 도저히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서울에 있는 이름난 작명소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만약에 똑같은 얘기를 한다면 개명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는 선배님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세검정 인근에 위치한 유명 작명가 선생님을 찾아뵀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말씀이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내용과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바람에 깜짝 놀랐다. 이쯤 되니 내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고 나는 딸내미의 새로운 이름을 부탁드리고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기로 했다.


그다음 주에 선생님은 한자로 쓰인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나는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받자마자 딱 마음에 들었다. 특히 원래 여자 이름에는 '참 진(眞)'이나 '보배 진(珍)'을 많이 쓰는데 '나아갈 진(進)'을 쓰신 것이 내 마음에 흡족했다.


이제 다시 검증(?)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새 이름을 받아 들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다시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대구의 작명가 선생님께 확인을 받았고 그제야 '여진'이라는 새 이름으로 개명하기로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다.    


이왕 이렇게까지 된 이상 모든 일을 내 손으로 끝까지 처리하고 싶어서 나는 당시 유행하던 '다음'의 카페 중 '개명클럽'을 찾아 들어가 아이 이름을 새로 바꿀 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습득하여 법원에 접수했다. 이삼 주 후에 드디어 개명이 완료되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개명클럽의 조언 중 개명 신청서 첫 문장은 무조건 '존경하는 재판관님'으로 시작하라는 충고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누가 보면 아이 이름 하나 가지고 왜 이리 유난을 떨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손녀가,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조부모와 부모의 마음에서 했던 일이라 지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몰라서 넘어간다면 모를까 알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만에 하나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의 뒷감당을 누가 하겠는가. 자식의 미래를 두고 모험을 감수할 부모는 지구 상에 없다고 본다.  


딸내미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둘째 녀석이 태어났을 때는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 나는 평소 사람의 이름이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취지에 맞는 이름을 다섯 개 정도 고민해서 적어 보았다.


지훈, 현빈, 성훈 등등. 그리고 그 이름 후보 명단을 어머니께 드렸고, 어머니께서 작명가 선생님께 부탁해서 사주와 획수를 고려한 이름으로 받아오신 게 '지훈'이었다. 앞서 겪은 시행착오로 인해 훨씬 수월하게 이름 짓기를 완수했다.


요즘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아이의 이름도 영어식 발음으로 짓는 부부들이 많이 있다. 태오, 유리, 수지 등등. 정답이 없는 시대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떨까. 그저 사람의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는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에, 특히 부모님의 이름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성실하게 열심히 생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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