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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Dec 29. 2018

좋은 직장의 기준과 부모님 일터 방문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29

누구나 다니고 싶어서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의 기준이 시대의 흐름과 세대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농담 삼아 '신의 직장'이니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니 심지어 '신도 모르는 숨겨진 직장'이니 하는 말이 좋은 직장을 표현하는 말로 유행했었다.


몇 년 전부터 너무 어려운 취직보다는 '창업'을 선택하고, 가늘고 길 게를 외치는 '공시생'이 크게 증가하고, 주위의 시선보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소확행'을 추구하는 등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100인 100색의 시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직장에 막 취업을 했을 때인 20여 년 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좋은 직장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근무하는 회사를 내 자식에게도 적극 입사를 추천해주고 싶다면 그게 바로 좋은 직장이라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일부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왜냐면 몇 년 전에 비해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여러 대내외 환경의 변화로 인해 소위 말하는 전도양양(前途洋洋)한 유망 기업과 직업이 대폭 바뀌었고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견지해 온 기준과 가치관으로 아이들에게 추천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예컨대, 내가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시절엔 신문 사설에서 우리나라는 '이공계를 너무 찬밥처럼 대우한다'라는 취지의 글을 다반사로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이행입니다(이과라서 다행입니다)"란 말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나의 경우에도 고등학교 3학년 때 향후 진로를 놓고 어느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할지 고민할 당시 아버지께서는 새로 생기는 '세무대학교'를 추천하셨다. 당시엔 전액 국비 장학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이고 향후 진로도 탄탄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그 길을 가지 않았고 나중에 아버지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잠시나마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도 쉽게 취직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세무사와 공인회계사는 너무 많이 사회로 쏟아져 나와서 예전에 비해 희소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AI(인공지능) 시대가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세무사/회계사라고도 한다.     


특히나 요즘은 직장이라는 말보다 직업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특별히 어느 기업이나 단체에 속하지 않고도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평균 기대수명이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남에 따라 평생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기보다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업(業)을 바탕으로 제2의 인생, 제3의 인생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귀농처럼 사전 학습과 준비를 통해 전혀 다른 업(業)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실 아버지의 경우에도 다니시던 직장에서 조기에 퇴직을 하시고 전문적인 업(業)을 바탕으로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 사례이다. 시대의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신 아버지가 새삼 대단하심을 느낀다.   


몇 년 전부터 기업에서는 좋은 인재를 영입하고 붙잡아두기 위해 '좋은 일터 만들기'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좋은 일터 만들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직원 자녀들을 초청해 부모님의 일터를 탐방하게 해주는 체험 프로그램까지 등장했고 나도 회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이들을 초청해 견학을 시켜준 적이 있다. 프로그램 도우미가 친절한 설명과 함께 회사 여기저기를 견학시켜주고, 기념품에다 맛난 점심까지 제공받으니 아이들의 입에선 "아빠 회사 최고야"가 나왔고 그 말을 들은 나도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어릴 때엔 부모님이 근무하는 직장은 웬만해서는 가보기 힘든 곳이었다. 탐방 프로그램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는 직장을 찾아간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 나와 열 살 터울인 막내 여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께서는 산후조리 중이셨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나 혼자 버스를 타고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직장을 찾아갔다. 아버지 직장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같은 직장에 근무하시는 분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사무실까지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옛날 직장의 사무실이 다 그렇듯이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다지 밝지 않은 사무실 조명에다 철제로 된 책상과 캐비닛, 그리고 사무실 천정에 걸린 커다란 선풍기가 기억이 난다. 자녀 초청 일터 탐방 프로그램은 전혀 시도해 볼 수 없는 딱딱한 사무실 구조와 환경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아버지께서는 포항에서 근무 중이셨는데 내가 친구들과 피서 겸 포항에 놀러 갔다가 아버지 사무실을 들린 적이 있다. 그때 직장 동료 분들께서 나를 매우 친절하게 반겨 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더운 여름철이라 냉커피도 타 주시는 등 그렇게 친절한 대접은 지금까지도 몇 번 받아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께서 개인 사무실 개업을 하셔서 개업일 당일을 제외하고는 따로 찾아뵐 기회가 없었다.


부모가 근무하고 있는 일터를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부모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주는 것은 참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다. 꼭 그 직장이나 그 직업에 대해 알리는 목적보다도 요즘처럼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고 소통 또한 쉽지 않은 시대에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는 데 일조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기업 환경이 나날이 바뀌고 있고 새로운 직업이 나날이 생기고 있어서 부모가 자식에게 섣불리 제언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라 점점 소통이 어려워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빨리 발견해서 평생 직업 삼아 그 분야로 잘 성장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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