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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Feb 03. 2019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만 보여다오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41

30년 전 대학입시 재수를 하던 시절에 학원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인생에 있어서 재수는 필수고, 삼수는 선택이라고. 그만큼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입시에 재도전 또는 그 이상의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다녔던 대학입시 학원에도 삼수생들이 60여 명으로 구성된 한 반마다 10%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1989년. 나는 한 달 동안 다니던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결국 짐을 싸서 재수의 길로 들어섰다. 부모님은 사전에 충분한 상의 없이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를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셨다. 부모님의 반대 사유는 다니면서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길로, 원하는 길로 나아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다. 그렇지만, 길고 긴 설득 끝에 - 사실은 억지를 부려 내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세웠지만 - 결국은 내 뜻대로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딸내미가 몇 해 전에 수능시험을 평소 실력대로 보지 못해서 당초 목표로 정했던 수준의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때 내가 30년 전 내 부모님과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옛날에 비해 대학 간판 자체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니 웬만하면 그냥 다니면서 열심히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그렇지만 딸내미도 결국엔 재수의 길을 택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의 재수 생활도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물론 독한 마음을 먹고 시험을 치르는 직전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획득하는 인간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친구들도 더러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 작심(作心) 이삼 개월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곧 4할을 칠 것 같은 고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프로야구 선수에게도 불현듯 슬럼프가 찾아오는데 하물며 학교생활만큼 관리 감독이 철저하지 않은 학원 생활을 하는 재수생에게 찾아오는 슬럼프와 일탈은 그야말로 다반사다. 그 슬럼프와 일탈이 나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짧게나마 대학 생활을 맛보고 남들보다 두 달여 정도 학원생활을 늦게 시작한 탓인지 모의고사 성적이 생각보다 빨리 오르지 않자 자신감보다 씁쓸함과 무력감에 젖어들기 시작했고, 밤늦게까지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는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장을 찾거나 새우깡 안주에 쓴 소주를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부모님께서도 내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잠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셨지만, 열심히 하라는 일상적인 말씀 외엔 일체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런 부분 때문에 부모님께 더 죄송한 마음이 있었으나 한번 찾아온 슬럼프는 쉽게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방황하며 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접어든 어느 날,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섰는데 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평소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는 친구 분들이 집에 와 계셨다. 내가 들어서자 그중에 한 분이 요즘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하시면서 오늘 아버지께 좋은 일이 생겼으니 술 한 잔을 따라 드리라고 하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축하드린다며 아버지께 맥주 한 잔을 따라 올렸다. 알고 보니 그날은 아버지께서 지난 수년간 힘들게 준비하신 자격증 시험에 최종으로 합격하신 날이었다. 쉰이 넘으신 연세에 엄청난 노력으로 일궈내신 쾌거였다.   


조금 있다 친구 분들이 모두 가시고 난 후 아버지께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 맥주를 한 잔 따라 주셨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는 요즘 네가 무슨 고민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 대충 다 알고 있다. 처음에 각오를 다짐한 것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니라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네가 원래 다녔던 대학보다 못한 대학에 들어가도 괜찮다. 다만, 앞으로 남은 두 달 동안 아버지한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니, 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라. 그러면 된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까지 아버지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을 들으면서 그 순간만큼 가슴에 팍 와닿은 것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아버지께,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재수를 한 대학입시에서 비록 최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차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최선을 다함으로 인해 부수적인 운이 따라 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가 "혼이 담긴 진정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이후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그것으로 족하다'란 말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몇 년 전 영업 부서에 근무할 때 고객 판촉행사 차원에서 유명 서예가를 초청하여 가훈을 써 주는 이벤트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를 얘기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문구가 쓰인 두루마리 족자를 받았다. 물론 지금도 집에 잘 보관하고 있다.


수능 시험 재도전을 앞둔 딸내미에게도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수십 년 전 아버지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과 똑같은 말을 해줬다. 위안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그 결과가 저절로 주어진다거나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내가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나를 돕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자칫 상투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한 진위는 본인만이 알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말은 삼대에 걸쳐 전해지는 위대한 유산과도 같은 경구이자 내가 가훈으로 삼을 만큼 의미심장한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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