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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Jan 14. 2019

추석 성묘 가는 길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37

어릴 적 매년 추석날 아침이면 부모님을 따라 큰집으로 갔다. 우리 집에는 아들이 나 혼자뿐이라 큰아버지께서는 제사상 차리는 법, 지방 쓰는 법, 절하는 법, 술을 따르고 올리는 법 등을 기회 될 때마다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내가 그런 부분들을 싫어하지 않고 잘 배우려 하는 모습을 보여서 큰아버지께서는 기특하다고 예뻐해 주셨다.

  

아침을 먹고 나면 조상님들의 산소가 있는 선산으로 성묘를 가는데 그때는 큰집과 우리 집 모두 자동차도 없었고 무엇보다 가는 길이 불편해서 모두가 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선산이 있는 '지천역'은 아주 작은 역이어서 완행열차만 정차를 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40여 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산소가 있는 곳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어야 했다. 가는 길의 절반은 시골 마을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그나마 잘 다져진 흙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리 높진 않지만, 그래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산길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뿐이었지만 나는 성묘 가는 길을 즐겼다. 우선은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시골길을 걷는 것이 나름 정겹고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을 곳곳에 늘어서 있는 대추나무를 지날 때마다 큰아버지께서 잘 익은 놈을 골라 따주시면 와드득 소리와 함께 먹는 것도 좋았다. 선산 아랫자락에는 밤나무가 많았는데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나뭇가지를 흔들어 떨어진 밤을 까거나 줍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산소에 도착해 윗 조상님부터 차례로 준비해 간 음식을 올리면서 절을 드리고 나면 평평한 곳을 골라 자리를 펴고 큰집과 우리 집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남은 음식을 먹으면서 조상님들과 가족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이야기 중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가 갓 시집오셨을 때의 이야기도 있었다. 집에서 평소에 아버지 어머니께는 잘 듣지 못하는 내용들이라 어린 나에겐 마냥 신기하게 들렸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까지는 기차를 타고 성묘를 다녔는데 그 이후는 큰집과 우리 집에 자동차가 생기기도 했고 선산으로 가는 잘 닦여진 도로가 개통되어서 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면 기차를 타고 갔을 때와는 달리 선산의 반대쪽 방향으로 올라가게 되어서 시골길을 걷는 구간이 거의 없고 곧바로 산을 올라서 30여 분 정도만 가면 산소에 도착하다 보니 사실 성묘 오가는 길에 느꼈던 시골의 가을 정취를 느끼지 못해서 못내 아쉽다.


게다가 요즘은 추석 당일에는 성묘를 하지 않고 추석 1~2주 전에 벌초를 하는 것으로 성묘를 갈음하는데 나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매번 참석이 여의치 못하다. 그래서 추석에 성묘를 못 갈 경우가 많아서 늦가을에 있는 묘사를 지낼 때 꼭 참석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둘째 지훈이는 묘사에 참석할 때 몇 번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가끔씩 자기도 산소에 가보고 싶다는 말도 한다. 역시 모든 것은 경험과 교육에서 비롯되나 보다.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제사문화는 뿌리가 깊다.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 제사를 지내는 방식이 많이 간소화되었고 돌아가신 조상님들보다는 살아있는 후손들의 편의에 맞게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산소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납골당이니 수목장이니 하는 단어들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었다. 나는 집안의 어른들 중에는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한 경우, 납골 묘에 묻히신 경우 등 돌아가신 후의 장 방법이 다 달랐다.


부모님께서는 아직까진 건강하게 잘 계신다. 하지만 사람이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어느 날 인가엔 나도 하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준비를 할 날이 올 것이다. 당연히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해 드릴 것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언뜻 수목장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하셔서 알아본 적이 있다. 먼 훗날 내 아이들과도 성묘 가는 길에 대한 추억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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