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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Jan 19. 2019

삼대에 걸친 치킨 마니아 집안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38

한국 자영업자의 상징인 치킨집의 수가 3만 여 개가 넘어 전 세계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의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어느 뉴스 미디어가 전한다. 교촌치킨, BBQ치킨, BHC, 굽네치킨, 네네치킨, 처갓집 양념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노랑통닭, 깐부치킨 등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도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오리지널 후라이드, 양념치킨, 오븐구이, 찜닭, 파닭, 불닭, 순살구이, 통다리구이, 뿌링클, 올리브치킨, 팝콘치킨 등 각 치킨 브랜드마다 다양한 메뉴가 즐비하다.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경기나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은 매출이 최소 1.5배 이상 뛴다고 한다. 가히 '치킨 공화국'이라고 불릴만하다. 명문대 출신 치킨집 사장 아저씨들도 꽤 있어서 집에서 풀다가 모르는 문제를 옆 집 치킨집 사장님이 가르쳐 주셨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다고 들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 길 건너편에 '진미통닭'이라는 자그마한 치킨집이 있었다. 늘 그곳만 이용했기 때문에 가게 이름도 기억이 나고,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늘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보자기를 두른 채 일을 하셨던 것도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당시엔 치킨 프랜차이즈가 없었고 간혹 전기구이를 하는 집이 있긴 했지만, 대개는 재래시장 주변에 주로 닭을 기름에 튀겨서 파는 통닭집이 동네마다 한두 개 정도 있었다. 그래서 치킨이라는 말보다는 통닭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치킨이라는 말은 양념치킨이 등장한 이후에 통닭을 대체하는 용어로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 내가 중학생이었던 즈음에 '페리카나 치킨'이라는 양념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당시 인기 개그맨이었던 최양락 씨를 모델로 한 광고에 힘입어 돌풍을 일으켰다. 그 이후부터 통닭이라는 익숙했던 말보다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이라는 말로 구분해서 사용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 토요일 저녁을 먹고나면 매주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버지께서 나에게 '진미통닭'으로 통닭 심부름을 보내셨다. 당시 기름에 튀긴 통닭 한 마리 가격은 2,5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아주머니께 통닭 한 마리를 주문하고 나면 보통 3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어떤 날은 가게에서 TV를 보면서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근처 재래시장에 아직 문 닫지 않은 가게를 둘러보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통닭 한 마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직 갓난아기였던 막내 여동생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꼼꼼하게 살을 발라가며 맛있게 나눠 먹었다. 통닭 한 마리가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었을 텐데 물론 저녁을 먹고 난 이후라지만, 부모님을 비롯한 다섯 식구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아버지께서 엄청난 치킨 마니아시라곤 생각되진 않지만 적어도 치킨을 즐기시는 편이었고 나도 어릴 때부터 그 영향을 조금씩 받았다. 사실 그 시절에 치킨 마니아란 말이 있지도 않았지만 온 가족이 모두 치킨을 좋아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그만큼 아이들을 위한 군것질거리가 다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그 통닭 맛을 잊지 못해서 요즘도 주로 오리지널 후라이드 치킨을 즐긴다. 그렇지만 어느 집을 가더라도 그 맛이 나지 않아서 굉장히 아쉽다. 실제로 그 맛을 내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수많은 다른 맛있는 먹거리들에 익숙해진 입맛이 그때 그 맛을 찾아가지 못하는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는 가끔씩 직접 닭을 사다가 집에서 찜닭을 해주셨다. 그 맛은 지금의 봉추찜닭이니 안동찜닭이니 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찜닭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좋은 식재료를 바탕으로 어머니의 음식 솜씨와 더불어 정성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점심을 같이 하는 모임 중에 '치킨 모임'이 있을 정도로 지금도 치킨을 즐겨 먹는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삼계탕이든, 오븐구이든, 후라이드 치킨이든 상관없이 늘 치킨을 먹는다. 그리고 퇴근 후 동료들과 치맥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집사람과 첫째 여진이는 치킨을 그다지 즐겨 먹지 않는데 둘째 지훈이가 나를 닮아 치킨을 무척 좋아한다.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한창 자랄 때라 그런지 먹는 양도 어마어마하다. 한 마리를 혼자서 거의 다 먹어 치운다. 아빠가 치킨 한 조각이라도 거들라치면 살짝 눈치를 주는 정도다. 삼대에 걸쳐 진정한 치킨 마니아가 탄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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