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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Feb 27. 2019

로봇 태권 V에서 마블 히어로까지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48

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76년에 '로봇 태권 V'  영화로 만들어졌다.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개봉되어 서울에서만 10여 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엄청난 흥행작이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술인 태권도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을 결합시킨 스토리로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7년 1월에 디지털 복원판으로 31년 만에 재개봉되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극장에서 '로봇 태권 V' 영화를 봤다. 그게 내 인생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다.   


'로봇 태권 V' 이후 김청기 감독의 두 번째 국산 로봇인 '황금날개 123'을 비롯해 '마루치 아라치', '전자인간 337', '똘이장군'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마니아였던 나는 부모님을 졸라서 당시 작품들을 빠트리지 않고 거의 다 다.


매번 부모님께서 극장에 같이 가시진 못했지만, 함께 가시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든 보호자를 섭외(?)셨다. 같은 동네에 이웃으로 살았던 삼촌뻘 연배이신 형님나와 내 또래 친구들을 인솔해서 몇 번 극장을 데리고 가 주셨다. 우리들은 그 형님을 꼬마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따랐다. 지금 시점에서 그때를 되돌아보면, 요즘처럼 개인화가 만연화된 파편적인 인간관계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참 고마운 분이셨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만화책을 즐겨 보는 것을 아셨던 아버지께선 학교 숙제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조건 하에 매달 발간되는 어린이 잡지를 잊지 않고 사다 주셨다. 어깨동무, 소년중앙, 보물섬이 그것이다.


이들 월간 잡지엔 어린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의 기사도 다수 실렸지만, 고우영, 길창덕, 김동화, 강철수, 이두호, 박수동, 신문수, 이상무, 이우정, 허영만 등 당대의 인기 만화 작가들의 작품들이 실려서 좋았다. 길창덕 작가의 <꺼벙이>, 신문수 작가의 <로봇찌빠>, 이우정 작가의 <야구왕>, 박수동 작가의 <번데기 야구단>, 이두호 작가의 <까목이> 등이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께선 내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수년 동안 잡지를 매달 정기적으로 사다 주셨다. 나는 매달 잡지가 발간될만한 시점이 되면 퇴근해서 오시는 아버지의 손에 잡지가 들려 있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께서 주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잡지를 밤잠을 아껴가며 읽었던 적도 있다. 다음 달 잡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내용을 완전히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잡지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해당 분야의 잡지를 정기 구독해서 필요한 부분의 지식도 넓히고 간접체험을 통한 견문도 넓힌다.      


둘째 지훈이가 나를 닮아서인지 어릴 때부터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텍스트만으로 된 책을 읽으라고 하면 잘 읽지 않았는데 같은 내용의 책이라도 만화 그림으로 된 것은 몰입해서 읽었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 '슈렉' '라이온 킹' '알라딘' '곰돌이 푸' 등 애니메이션 콘텐츠와 그 콘텐츠 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유달리 좋아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아이언맨' '어벤저스' 등 마블 코믹스의 작품과 캐릭터, 그리고 '슈퍼맨' '베트맨' 등 DC 코믹스의 작품과 캐릭터에 푹 빠져들었다.


지훈이와 같이 극장에 자주 다니다 보니 나도 지훈이 못지않게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 콘텐츠의 마니아가 되었다. 모든 영화 콘텐츠를 파일로 소장하고 있고 틈날 때마다 같은 작품을 몇 번씩 되풀이해서 보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시리즈가 언제 나올지 손꼽아 기다린다.


여러 콘텐츠와 캐릭터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단연코 '아이언맨'이다. 지훈이와는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에 관련된 얘기를 자주 주고받는다. 아이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면이 많은 것 같다.


아버지께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잡지를 사다 주시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조건을 거셨는데 나도 지훈이에게 마블 히어로즈 캐릭터를 사 주면서 아빠 엄마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조건을 걸곤 했다.


자식이 좋아해서 사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부모가 반대급부를 제안하는 것은 아마도 전 세계 공통의 보편적인 일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자식이 부모와 한 약속을 잘 지켜나가면 또 다른 보상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속마음이다.


비록 빠져들게 된 출발점은 다르지만 어쨌든 나는 아버지와 같이한 '로봇 태권 V'에서부터 아들과 같이한 '마블 히어로즈'까지 40여 년의 세월을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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