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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Mar 03. 2019

르망, 우리 집 첫 자동차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49

우리 집의 첫 자동차 운전면허증 소지자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셨다. 손재주가 있으신 어머니께선 소리 소문 없이 면허를 취득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운전면허증은 있으시지만 연습 운전이 아닌 실제로 운전을 해보신 적은 없다. 소위 말하는 장롱면허다.


어머니께서는 면허를 취득하신 후 도로주행 연습을 거쳐 곧바로 자동차를 구입하셨다. 우리 집 첫 차는 대우자동차에서 제조한 당시 인기 브랜드인 '르망'이었다. 기본적으론 짙은 그레컬러였고 트렁크 부분에 블랙 컬러가 섞여 있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집 첫 차인 '르망'을 그다지 많이 타보진 못했다. 대학 입학 후 서울 생활을 시작한 데다가 2학년 때 군에 입대를 해서다. 어머니께서 구입하신 차 중에 내가 제일 많이 타 본 차는 몇 년 후에 '르망' 다음으로 구입하신 '소나타 3'였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연립주택 단지였던 동네 전체에 자가용을 가지고 있었던 집이 한 두 가구에 불과했다. 나랑 동갑내기 친구인 집에 자가용이 있었는데 현대자동차에서 제조한 '포니'였다. '포니'는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고유 모델이었으며, 우리나라 수출 1호 자동차다. 동네 골목 한가운데 떡하니 주차되어 있던 차를 볼 때마다 친구네가 부럽다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 집은 언제나 차를 살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어머니께 전해 들은 얘기로는, 한 번은 부모님께서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에 등산을 가시려고 나섰다가 한가한 도로를 보시고선 아버지께서 연습 삼아 운전대를 잡으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선 운전이 서투르셔서 차가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차선을 넘나들며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비틀 거리며 걷듯이 말이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순찰차가 따라붙었다. 경찰은 길 가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게 하고선 음주 측정기를 들이밀었다고 한다. 차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음주운전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서투른 운전이 불러일으킨 오해이자 해프닝이었다. 아버지께선 그 이후론 연습으로라도 운전대를 잡으신 일이 없다.    


나는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고 난 겨울방학 때 부모님의 권유로 자동차 운전 면허증 취득에 도전했다. 마침 같은 아파트 단지 같은 라인에 자동차 운전학원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셔서 할인도 받고 해서 얼른 등록했다. 운전 배우기는 생각보단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큰 시험을 치르고 난 뒤라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 첫 번째 면허시험 도전 중 그만 1차 필기시험에서 낙방을 했다.


다음날 운전학원에 가보니 학원 전체에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필기시험에 떨어진 젊은 친구가 있으니 모두들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며 같은 아파트 주민이신 사장님께서 농담을 가장한 창피를 주셨다. 너무 부끄러워서 부모님께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절치부심 끝에 두 번째 도전에서 필기와 코스시험을 통과하고, 세 번째 도전에서 주행시험까지 통과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는데 우연히 수송병과 지원병 모집 공고를 보고선 자원을 했다.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따뒀던 운전 면허증 덕분이었다. 군에서는 후반기 교육이란 이름하에  '2와 1/2톤'으로 불리던 수송용 트럭으로 8주간 운전교육을 받았다.


군에서 쓰는 용어가 2와 1/2톤이지 실제 민간에서는 10톤에 해당하는 트럭이었다. 그런데 후반기 교육까지 받고서는 행정병으로 차출되는 바람에 나의 운전 경력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거의 명절 때만 대구 본가에 내려오다 보니 도로 연수를 할 시간도 없었고, 어머니 대신 차를 운전할 기회도 갖질 못했다.


내가 다시 운전대를 잡은 것은 군에서 제대하고도 몇 년이 지나 결혼까지 하고 난 이후였다. 정확히 1999년 9월에 첫 딸이 태어나고 그 해 말에 나의 첫 차인 '리오'를 구입하고 난 후였다. 거의 7~8년 정도나 운전을 하지 않았기에 이틀 동안 도로 연수를 받고 나서 실제 운전대를 잡았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 외에는 별다른 사고도 없었고 첫 차 '리오'를 10년 동안 타고, 두 번째

차인 'NF소나타'를 12동안 타고, 얼마 전 세 번째 차인 '제네시스'로 바뀠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그러신 편인데 나 또한 자동차는 그저 튼튼하고 안전하게 굴러다니면 족하다는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수입 자동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전혀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얼마 전에 대입 수능시험을 치른 딸내미에게 운전은 언제 배울 생각이냐고 물어봤더니 아직은 전혀 생각이 없다고 한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알아서 할 터이니 내가 더 신경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머잖은 미래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될 것이니 굳이 운전을 배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하려고 할 때만 해도 남자는 나중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9인승 승합차 이상도 운전할 수 있는 '1종 보통면허'를 따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세상이 또 많이 변했다. 요즘 그런 말을 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꼭 자동차 운전면허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잘 읽고 잘 대처하는 역량이 요구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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