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이로 쉰두 살. 아버지께서 수년동안의 준비와 노력 끝에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신 나이다. 삼십 년 전의 쉰두 살이라는 나이의 무게는 지금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 치열했던 준비 과정과 열정적인 노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한 기간 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 약속을 멀리 하시고 일찍 귀가하셨고 저녁 식사를 하신 후엔 스탠드 불빛 아래서 여러 책들과 씨름하면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하셨다. 졸음이 오면 초저녁에 한두 시간 눈을 붙이시고 한밤중에 일어나서 다시 책을 보곤 하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라 시험기간에는 나도 아버지와 비슷한 방법을 선택해서 초저녁에 자고 한밤중에 일어나 공부를 했는데 아버지께서 늘 나를 깨워 주시고는 당신께서도 시험공부를 하셨다.
아버지께서 마흔아홉 되시던 해에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오른팔에 깁스를 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어머니께선 놀란 가슴을 달래시며 아홉수에 삼재가 있었는데 이만하길 천만다행이고 액땜한 걸로 치면 된다며 아버지를 위로하셨다.
오른팔이 불편하니 공부는 물론이고 생활 자체가 엄청 불편하셨지만 두 달 남짓한 오른팔 부상도 아버지의 열정과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대학에서 쓰는 논술용 답안지 서식에다가 책을 통해 익히신 것을 써가며 공부를 하셨는데 글씨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시면서도 마치 어린아이가 볼펜으로 낙서를 한듯한 글씨체로 빈 종이를 빼곡히 채워 나가셨다.
다친 팔이 나을 때까지 좀 쉬엄쉬엄 하실 만도 한데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셨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열정에 대한 얘기를 가끔씩 하는데 아마도 아버지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까닭에서 일 것이다.
한 번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사전 기별도 없이 서울에서 사촌 형이 와 있었다. 명절 때도 아니라 순간 무슨 일이 생겼나 싶은 생각에 반가움보다 긴장감이 일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당신의 시험공부에 꼭 필요한 과목을 서울 유명 학원에서 사촌 형이 대신해서 듣고 강의 내용을 필기하도록 부탁했던 것이었다. 이것저것 바쁜 대학생이었던 사촌 형이 아버지의 부탁을 잘 완수(?) 한 것도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 그런 방법을 생각하신 아버지도 참으로 대단하셨다.
세월이 한참 지나 형 얘기를 들어보니 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꾹 참고 학원을 다니느라 정말 힘들고 괴로웠다고 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필요로 하는 강의를 듣는 것도 아니고. 나라면 아마 그렇게 못했을 것 같다. 아버지께서 당연히 형의 수고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셨겠지만 형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시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아버지는 몇 개월간 휴직을 하시고 서울에 올라와서 학원도 다니시면서 최종적인 시험 준비를 하셨다.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어느 여관방에 홀로 장기 투숙을 하셨는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나는 재수를 하기 직전에 종로에서 가까운 S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었고 아버지를 뵌 지도 꽤 오래되었길래 아버지가 머물고 계신 여관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선 요즘 공부할 시간이 모자라 점심은 잘 안 드신다고 하시면서 공부에 방해가 되니 급한 용건이 아니면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다. ㅂ
마음 한 편으론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또 한 편으론 아버지께서 이번 시험에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엄격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으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나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격 획득을 목표로 시험공부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수험생 아니 고시생들의 고충과 심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진 못하다. 이번엔 될 것 같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얼마나 상심이 클지 그 마음이 상상이 잘 안 된다. 벌써 십오 년 전의 일이지만 사법고시 2차 시험에서 좋은 성적으로 시험을 보고도 아깝게 단 2점 차이로 한 과목이 과락이 되는 바람에 결국 최종 합격에 실패한 친구를 위로해 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애당초 고시생은 꿈도 꾸지 않은 내가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게 어떤 종류의 시험이든 고시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아버지께선 사십 대 중반의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늦깎이 수험생으로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셨다. 정확히 몇 년간 준비를 하셨고 몇 번의 도전과 실패 끝에 성공을 거두셨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께서 위대한 유산으로 나를 비롯한 동생들에게 물려주신 것은 그때 획득한 자격으로 인해 팔순을 넘기신 지금까지도 현역 세무사로서 활동하고 계신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고자 하는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 사남매에게 이래라저래라 말을 하신 적도 없으시다. 그저 묵묵히 실천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 전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도전 의식과 열정의 마인드가 갖춰져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한 가지라도 제대로 실천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늘 새로움에 도전하고 그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부모님께 약속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내 아이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