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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양화 Dec 07. 2021

엄마 이빨 뽑는 법 검색해도 돼?

엄마로 산다는 것


“엄마! 이빨 뽑혔어~~”

오후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나는 아이들 저녁과 숙제를 챙기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딸이 험한 표정을 지으면서 보이는 입 속에는

아직도 하얀 이빨이 나불나불 잇몸에 달라붙고 있지 않은가. 잇몸과 이빨이 가까스로 이어진 곳에서는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다. 그만 “히~”하고 기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엄마’라는 직업에 ‘기절’이라는 선택은 NO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럴 때 항상 서슴없이 그 책임을 맡아준 남편이 아직 직장에서 안 돌아왔다. 주중에 일찍 안 돌아오는 남편을 원망한 적은 거의 없다. 저녁을 밖에서 해결해주니 솔직히 너무 편하다.

아이들은 감치 볶음밥만 있으면 좋아한다.

‘자기야 이럴 때(만) 당신의 부재가.... 미워~’ 속으로 혼잣말로 남편을 원망했다.


찌푸린 얼굴로 나를 보면서  “아파 엄마~”하는 딸을 위해 나는 즉시 움직여야 했다.

곤란하다. 45년간 살아왔지만 아이 이빨이 빠질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배워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첫째 아들 이빨은 거의 치과 선생님이 빼주셨다. 전기 검진 이나 충치치료를 다닐 김에...


어릴 적 나는 그냥 혼자 이빨을 뽑았다. 손가락으로 흔들흔들 효로 흔들흔들. 부모님이 한 번쯤 실로 돌돌 감고 뽑아주셨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난 회피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금방 뽑힐 것 같아... 거울 보면서 자기가 할 수 있니?”

내 말을 들은 딸은 급히 연필을 손에 들고 연필 심을 입속에 놓았다. 흔들리는 이빨을 그것으로 밀고 있는 것을 본 나는

 “안돼!! 연필로 하면 더러워. 엄마가 집게를 줄게”

어디까지나 어떻게든 딸이 혼자 빼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화장 파우치 안에 있던 내 집게를 싱크대에서 씻었다. 키친 페이퍼로 닦고 딸에게 줬다. 이런 과정 모두가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행동이 올 은지 구른 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거울을 보면서 집게로 이빨을 빼려는 딸은 용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번 시도를 했으나 결과는 연필 때랑 다름없었다. 딸이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아파~~ 엄마~~!!”

“조금만 더 잘해봐~ 이제 빠질 거야”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난 아직도 내가 딸 이빨을 어떻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그런 엄마 모습을 본 딸은 (아주 냉정히)

“엄마! 엄마 이빨 뽑는 법 검색해도 돼?”

라고 묻는다. 요리할 때도 검색, 인라인스케이트 탈 때도 먼저 검색을 하는 딸이다. 뭔가 모르는 일이 생기면 엄마에 물어보기보다 이제 유튜브 검색을 하는 일상이다. 당연히 이 곤란한 사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머리에 떠올랐겠지. 이국 살이 독방 육아맘의 강력한 아군. 유튜브의 등장이다.


“어~~ 어!! 검색해봐!!”

유튜브 검색장에 ‘이빨 뽑는 법’이라 놓으면 줄줄이 똑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이빨 뽑기 장면이 나왔다.

영상들을 보면 볼수록 중요한 2가지 키워드를 깨달았다.

하나: 이빨을 절대 손으로 뽑지 말라

둘: 부모가 이빨을 실로 돌돌 감아서 이마를 내밀면서 뽑아준다


단순했다. 내가 딸의 이빨을 실로 돌돌 감아 이마를 내밀면서 (때리고) 뽑아야 한다는 현실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었던 그 짓...

‘그 짓을 역시 해야 하는구나...’

‘난 잘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안 해봐서 자신이 없는데...’

난처한 엄마의 속마음을 아니다 모를까 딸은

“내가 혼자 실로 뽑아볼게!”한다. 딸도 엄마에 맡기기보다 자신이 하는 게 났다고 직감한 걸까?

“엄마 실만 돌돌 감아져! 내가 당겨서 뽑을게”

주도권은 완전히 딸에게 있었다. 우왕자왕 정신없는 나는 그녀의 원하는 대로 해야 했다.


머뭇머뭇 실을 입안에 놓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네 엄마가 아니면 이런 짓 못할 거야....”

진심이었다. 내 아이가 아니더라면 노들 노들 움직이는 이빨, 피가 흐르는 잇몸을  누가 보고 싶겠는가.


엄마니까... 그저 엄마란 이유로 난 해내야 한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쉽다는 느낌을 연출했다. 딸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익숙하지 않은 솜씨로 실을 감았다. 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드디어 입에서 검은색 실이 나온다. 그 실을 딸이 잡고 거울을 보면서 당겨본다. 몇 번 시도했으나 나의 소원과 달리 이빨은 좀처럼 뽑히지 않았다.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엄마가 해줘!!”


딸의 이 한마디가 나를

못하는 사람부터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신시켰다.


이 상황을 무사히 넘어가야만 했다. 딸 가까이에 다가가 입에서 나온 검은색 실을 잡았다.

“난 할 수 있어” 격려가 아닌 비명에 가까운 혼잣말이 머리에 맹돌았다. 그 순간


하얀 돌이 공중에 날았다. 그리고 깜쪽같이 숨어버렸다. 딸과 엄마는 서로 멍 때린 얼굴을 지켜보았다.

“뽑혔어~” 둘이가 함께 소리쳤다. 날아간 이빨이 마루에 있는지 살펴보니 우리 바로 아래 있던 의자 위에 있는 것을 딸이 먼저 찾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얄미웠던 이빨이 지금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물로 씻고 휴지 위에 놓고 한참 바라보았다.


엄마로 산다는 것

때로는 도저히 못하겠다 생각한 그 일을 해내는 삶이다.

아들 첫 기저귀를 갈았을 때의 당황스러움

식구들 앞에서 모유수유를 할 때의 어색함

첫째를 앞에 둘째를 뒤에 엎고 먹는 점심

이런 것들을 해내게 하는 모성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가시가 엄마로 되어가고

“엄마니까... 그저 엄마란 이유로 난 해내야 한다. “

 결심을 수없이 하는것

그것이

엄마로 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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