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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양화 Dec 08. 2021

너희 엄마 일본 사람?

딸(초3)과 딸 친구가 떠난 곳을 뒤 청리 하던 남편이 두장의 종이를 나에게 가져왔다. 1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너희 엄마 일본 사람?’

‘그러면 너희 아빠도?’


딸 필체로

‘맛이’(맞아)

‘아니’




일요일 오후였다. 남편이랑 카페 데이트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니 딸과 딸 친구가 상을 둘러앉아 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서로가 낸 수학 문제를 퀴즈로 푸는 듯했다.


‘아들(초5)과 노는 방식이 이리도 다를까...?!’흐뭇했다. 남아들은 게임할 때만 조용하다. 게임시간이 끝나면 (엄마가 강제로 끊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하겠지 한마디로 스트레스다) 비비탄 총을 들고 집안을 뛰어다니고 레슬링을 시작하고 싸움이 버러 진다. 아들과 딸, 확실이 노는 방식이 다르다. 당연히 난 아들을 이해 못 할 때가 많으리라.


딸은 집에 친구를 자주 데려온다. 4마리 햄스터 가족을 보이고 싶어서다. 거의 대부분 친구들은 햄스터 박스가 4개 나란히 놓인 것을 보며 “예쁘다~나도 키우고 싶어~”하면서 좋아한다. 딸은 온순한 햄스터를 친구 손바닥에 옮겨주거나 해바라기씨를 주는 방법을 알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햄스터 키우기 잘했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솔직히 큰 박스 4개가 거실을 차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 보는 아이네’ 생각하면서

 “안녕 잘 왔어”

내가 말을 걸자 수줍은지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딸 친구는 몸이 작은 편이었다.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때로는 쿡쿡 웃었다.’ ‘하하하’가 아니라 ‘쿡쿡’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함께 연필을 움직이는 모습은 ‘평화’그 자체로 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육점에서 사 온 삼겹살과 쌈을 부엌에서 꺼내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내 머릿속은 점점 마늘 썰기와 파채 만들기 모드로 전환되었다. 이것만 하면 고기 굽기는 남편의 못! 얼른 해치워버려야지~ 오랜만에 먹는 고기 맛을 상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남편이 종이를 가져온 것은 딸 친구가 집으로 간 저녁 7시경이었다. 딸과 친구가 둘러앉아있던 상위에 남겨진 그 종이다. 나는 쌈, 마늘, 파채, 쌈장을 탁상 위에 세팅하던 중이었다. ‘후~고기 구워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남편이 먹을 때 빠질 수 없는 청고추를 깜박했다. 냉동실에 있는 청고추를 꺼내려고 한 그 순간이었다. 종이에 쓰인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 너희 엄마 일본 사람?’

‘그러면 너희 아빠도?’

‘맛이’(맞아)

‘아니’


제일 궁금했던 것 딸의 대답이었다. ‘너희 엄마 일본 사람?’이란 질문 다음에 ‘맛아’라 했을까 아니면  ‘아니’라 했을까? ‘그러면 너희 아빠도?’ 이 질문에는 당연히 ‘아니’라고 했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흐름을 보니 딸의 첫 번째 대답은 ‘맛아’였던 것 같다.


정답은 이거다.


‘ 너희 엄마 일본 사람?’

‘맛이’(맞아)

‘그러면 너희 아빠도?’

‘아니’


평소 나는 ‘나’를 소개할 때 “재일 교포 3세”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거의 대부분 어른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개념을 쉽게 이해 못 한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일본 사람이야?”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아 야”

“그럼 엄마는 일본 사람이야?”

“아니 국적은 한국이야”

“그럼 한국사람이야?”

“그렇지 한국사람이지”

“엄마는 일본말을 더 잘하잖아?!”

“맞아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어, 오래오래 살다가 아빠 만나 한국으로 왔지”

“그럼 일본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일본 사람이야?”

“아니 할아버지도 한국사람이야, 할아버지의 아빠 엄마가 한국에서 사시다가 일본에 오신 거야”

수백 번 수천번 설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비치는 나는 아무리 한국말을 써봐도 한국음식을 차려도 ‘일본 사람’인 것이다.

내 일본 친구들은 나에게

“국적은 한국이지 우리랑 똑같잖아, 왜 외국인 취급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진심으로 말해준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귄 엄마들은 다들

“아니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양화 씨는 우리랑 같은 한국사람이잖아~일본 사람 아니야”다정하게 말해준다.


얼핏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이 나를 같은 나라 사람으로 반겨주니 너무 고맙고 너무 감사한 일이다. 내 주위에 있는 일본 사람, 한국사람 모두가 사랑에 넘친다. 근데

나는 본능적으로 일본 친구 앞에서 ‘일본 사람’ 인척 하고

한국사람 앞에서 ‘한국사람’ 인척을 하는 내가 싫다.

최종적으로 ‘비겁한 사람’이라고 나를  자책하게 된다.


‘ 너희 엄마 일본 사람?’

나는 아직도 이 질문의 대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글로 적어본다. 여기저기 흩어진 머릿속 의식을 모아 진짜 ‘나’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서...


종이는 2장 있었다. 2장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한국말 잘하신다





긴장이 확 풀렸다. 일단 긍정적인 평가다.

아이들에게 비친 내 인상은 바로 이것

‘너희 엄마는 일본 사람’이며 ‘한국말을 잘하신다’였다.

딸은 어떻게 느꼈을까? 어색했을까? 혹은 자랑스러웠을까?

왠지 지금 바로 이 질문을 하고 싶지 않다. 이 종이를 가둬놓고 3년쯤 지나서 딸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질문해 보고 싶다.


그때쯤이면   머릿속에 생각들지금보다  정리되어 있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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