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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양화 May 05. 2022

한국 일본 이야기 1

재일교포 3세 한국에 시집을 오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7개월 된 아들을 안고 진정 엄마와 아빠와 함께 한국 부산으로 들어왔던 날, 처음 보는 아파트를 가리켜 남편이 “여기가 우리 아파트야”라고 말했던 기억.



그때까지 한국에는 친구와 여행을 몇 번이나 왔었다. 서울 2번에 부산 2번. 그때마다 ‘저렇게 높은 건물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까!?’라고 한국 아파트가 우뚝 솟은 모습이 신기했다.

 ‘너무 높고 똑같아 보요... 마치 빌딩 같다...’ 여행을 왔을 때는 이렇게 바라봤던 그 아파트. 남편이 가리킨 아파트도 그때 내가 신기하게 바라본 아파트랑 전혀 다름이 없었다.


2층 주택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내가 21층에서 산다니!!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풍경을 보고 “갸~!! 무서워!”하면서 공포에 떠는 나에게 남편도 몹시 당황스러워했던 것 같다. 21층 풍경이 익숙해질 때까지 꾀 걸렸다. 너무 높아서 잠자리에 들어가서 눈을 감아도 눈앞이 빙글빙글 어지러웠다. 땅이 너무 멀리 느껴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이 개미처럼 보인 것을 기억한다. 특히 남편이 출장을 간 날은 잠을 못 잘 만큼 불안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다 그럿 듯 아이가 창 까에만 다가가면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


아파트 높이만큼 내가 놀랬던 것, 한국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었다.

장보고 아들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할머니께 “안녕하세요”인사를 했다. 나는 할머니도 ‘안녕하세요’ 하시는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대답 대신 나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질문을 하셨다.


“아파트 샀어? 전세로? 얼마로?”


이것을 들은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파트를 샀는가? 고 물어보는 것, 일본에서는 흔히 아니 거의 없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얼마로?’ 이건 내 감각에서는 진짜 친한 사람들 안에서도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내용이다.


(10년을 넘게 한국에서 산 나는 지금이면 그 할머니가 그렇게 기발한 말을 한 것이 아님을 뉘우치게 되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같은 아파트끼리는 평수랑 가격이 비슷한 것 , 거래 가격이 수시로 상하 하니 주민들이 수시로 확인을 한다는 것 , 판매냐 전세냐는 기본적인 회화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런 분위기를 아직 알지 못했고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 생활 속에서 아주 예민한 상태였다. 며칠 동안 함께 있어준 부모님이 일본으로 돌아가신 외로움과 혼자 육아를 해 갈 책임감 때문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 있었던 그 시기의 할머니의 질문이었다.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9월 중순 가을 철이었다. 나는 아들을 아기띠로 안고 자주 장을 보러 갔었다. 그때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는 마치 약속이나 했듯이 아기띠에서 나온 아들의 다리를 본 순간


“아이고~!! 애기 춥다!! 양말을 신겨야지 ~!!”


“발 시리다~~,양말!!”이라고 말했다.


이것 거짓말이 아니다. 지나가는 여성 99.9%의 확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엄마들은 한겨울에도 양말을 안 신길 때가 많다. 더군다나 가을철이나 봄철에 양말을 신기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의 양말을 비롯해 점퍼나 유모차 커버에 이르기까지 항상 길 가는 할머니들한테 사랑의 꾸중을 들어야 했다.


(이런 일도 지금이면 웃어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생활 왕초보의 나는 그때그때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 거리감이 당황스러웠다. 일본에서는 정말 아이가 추워 보여도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말을 거는 일은 드물다. 제발 나에게 신경 쓰지 마시라고요! 사춘기 아들들의 심정이 이것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람들의 사람과 사림 사이의 거리는 확실히 일본의 그것과 다르다. 그 거리감이 때로는 너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한 가족처럼 다 같이 가려고 하는 모습이 고맙기도 한다. 자기 아이도 아닌데 타인의 아이를 왜 그토록 걱정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한국의 정’이다.


내가 이 ‘한국의 정’을 이해할 때까지 1년쯤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1년쯤 지난 후부터는 “아이고 추워라!!”하는 할머니들에게 웃는 얼굴로 “네~”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다른 젊은 엄마들은 “네~”하는 대답 초차 안 한다. 그냥 웃어서 넘겨 버린다. 그것을 흥미스럽게 지켜보고 나서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들의 “아이고 추워라~”는 그냥 평소 딸에게 하는 인사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것을 들은 젊은 엄마들도 그냥 자기 엄마한테 하듯이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여자들끼리의 암호처럼 말이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할머니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애는 양말 싫어해서요...” “양말을 벗어 버려요...” “아토피 때문에 가려워해요...”이렇게 제대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있었고요.


그 시절부터 벌써 10년 이상이 세월이 지나갔다. 이제 내 아이들도 많이 크고 그 암호를 듣는 일은 적어졌다. 그러나 추운 겨울날에 검도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오늘 사범님이 점퍼를 안 입고 왔다고 나를 혼내셨어...”


웃음이 나온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의 추위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인식과 차이가 있는가 보다.

점퍼를 안 입고 왔다고 혼내주는 ‘한국의 정’ 나는 이 정이 고맙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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