絵本「家族(かぞく)の家族をどう呼ぶ?」娘がこの本を読みながら言った。
딸이 이 책을 보면서 말했다.
「オンマ、ウチに、ひいお婆(ばあ)さんって、いるの?」
“엄마 우리 외증조할머니 계셔?”
「いや、オンマのオンマのオンマだから、もう亡(な)くなられていないよ。」
“엄마의 엄마의 엄마니까 이제 돌아가셔서 안 계신단다.”
「けど、この本(ほん)に、出(で)てきてるのに?」
“근데 이 책에는 나오는데요?”
「うーん、そうだねぇ、100歳(さい)くらい長生(ながい)きして、子どもが早(はや)く結婚して子どもを産(う)んで、また、その子どもが早く結婚して早く子どもを産んだら、会(あ)えるんじゃないかなぁ」
“음… 그러게 , 100세쯤까지 오래 살고 아이가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일직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만날 수 있겠지”
ここまで言って、私は娘の娘の子(こ)どもと会(あ)えるのかなぁ?とぼんやり考(かんが)えた。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서 나는 딸의 딸의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35歳で結婚(けっこん)した事が、少(すこ)し悔(く)やまれる。
35세에 결혼한 것이 조금 후회된다.
曾孫(ひまご)とまでは言(い)わないが、孫(まご)ぐらいは抱(だ)っこしたい。
증손자 까지는 아니어도 손자 정도는 안고 싶다.
娘は、奇跡(きせき)と不可思議(ふかしぎ)が満(み)ち溢(あふ)れるこのサイクルに興味津々(きょうみしんしん)だ。
딸은 기적과 불가사의가 차고도 넘친 이 사이클에 흥미진진하다.
ふーんと言いながら、何やら熱心(ねっしん)に絵(え)を見(み)ている。
흐음, 하면서 뭔가 열심히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亡くなった)おばあちゃんが、オンマのオンマだよね?」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지?”
「うん」”응”
「私、おばあちゃんの記憶(きおく)、ひとつだけ覚(おぼ)えてる。プリクラ一緒(いっしょ)に撮(と)ったの」
“나 외할머니 추억 하나만 기억나, 스티커 사진 함께 찍었던 것”
「ふーん」
“흐음 “
母に食(た)べさせてもらい、オムツを替(か)えてもらい、たくさん抱(だ)きしめられた事(こと)は忘(わす)れている。
엄마가 밥을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많이 안아준 것을 기억 안 한다.
唯一(ゆいいつ)、プリクラを撮(と)った瞬間(しゅんかん)だけ、娘の記憶(きおく)に残(のこ)るなんて考えもしなかっただろう。
유일하게 스티커 사진을 찍는 순간만 딸 기억의 남을 줄이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私も孫(まご)の面倒(めんどう)なんて見ずに、TikTokでも一緒(いっしょ)に撮(と)らなきゃね, ププッ。
나도 손자 돌보기 같은 것 하지 말고 TikTok라도 함께 찍어야겠네. 뿌뿌.
そっちの方(ほう)がよっぽど覚(おぼ)えてくれるはず。
그쪽이 훨씬 기억해줄 것이다.
気(き)のせいか?娘の目(め)がガラスのようにピカピカ光に反射(はんしゃ)して濡(ぬ)れて見(み)える。
기분 탓일까? 딸 눈이 유리처럼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고 젖은 듯 보인다.
それとも、私の目頭(めがしら)が熱(あつ)くなっているせいか。
아니면 내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그럴까.
普段(ふだん)は忘(わす)れているようでも、ふとした瞬間(しゅんかん)、ボンヤリした記憶(きおく)がゆらゆら揺(ゆ)れる。
평소는 잊어버린 듯해도 어쩌다가 순간 어렴풋한 기억이 흔들흔들 꼼지락거린다.
幼(おさな)い頃(ころ)は分(わ)からなかった世代交代(せだいこうたい)。
어릴 적은 몰랐던 세대교체.
年(とし)をとるほど、その現実(げんじつ)を直視(ちょくし)し、スピードは加速(かそく)する。
나이를 먹을수록 그 현실을 직시하고 스피드는 가속한다.
暖(あたた)かく優(やさ)しかった温(ぬく)もりは、いつか写真(しゃしん)の中に入(はい)ってしまった。
따뜻하고 자애로웠던 온기는 언젠가 사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この本を見ると、韓国は、親戚(しんせい)の呼(よ)び方(かた)が日本より多(おお)い。
이 책을 보면 한국은 친척 호칭이 일본보다 많다.
例(たと)えば、日本では、母方(ははかた)も父方(ちちかた)も「おばさん」と言うが、韓国では母方はイモ父方はコモだし、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엄마 쪽도 아빠 쪽도 ‘오바산 ‘이지만 한국은 엄마 쪽이 이모 , 아빠 쪽은 고모가 되고
日本では義理(ぎり)のお兄(にい)さんには、そのまま「お兄(にい)さん」と呼(よ)ぶが韓国では、妻側(つまがわ)をチョナム、夫側(おっとがわ)をアジュボニムと呼(よ)ぶ。
일본에서는 배우자의 오빠(형님)를 그냥 오빠(형님)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아내 쪽을 처남이라고 하고 남편 쪽을 아주버님이라고 부른다.
私にも夫(おっと)のお兄(にい)さんがいるのだが、アジュボニムは、長(なが)すぎて、そして、アジュモニ(おばさん)みたいな感(かん)じがして、どうも、呼(よ)ぶのが恥(は)ずかしい。
나에게도 남편 형님이 계시지만 ‘아주버님’은 너무 길고 아줌마 느낌이 들어 뭔가 부르기가 창피하다.
そう言えば、夫の友達に「ジェスシと呼ばれた事があるが
참 남편 친구가 나보고 ‘제수씨’라고 부른 적이 있지만
弟(おとうと)の嫁(よめ)の呼(よ)び方(かた)だ。
남동생의 아내의 호칭이다.
韓国では、友達の妻(つま)さえ、ジェスシと呼んでしまうくらい距離感(きょりかん)が違(ちか)い。
한국에서는 친구 아내를 제수씨라고 할 만큼 거리감이 가깝다.
3歳年上(さんさいとしうえ)の私に「ジェスシ」?
3살 연상의 나에게 ‘제수씨’?
ははは、滑稽(こっけい)だ〜
아하하, 우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