昨日(きのう)、日本にいる弟(おとうと)の嫁(よめ)が懐(なつ)かしい写真(しゃしん)を送(おく)ってくれた。(姪めいと息子)
어제 일본에 있는 올케가 그리운 사진을 보내왔다. (조카와 아들)
9年前(きゅうねんまえ)の今頃(いまごろ)、私は韓国で2回目の結婚式(けっこんしき)を挙(あ)げた。
9년 전에 지금 쯤 나는 한국에서 2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誤解(ごかい)しないで。
오해하지 마시라.
相手(あいて)は1回目の結婚式と同(おな)じ人だ。
상대는 첫 번째 결혼식과 같은 사람이다.
その4年前に、日本でも式をあげたから2回目なのだ。
그 4년 전에 일본에서도 식을 올렸으니까 2번째인 거다.
日本と韓国の式の1番の違(ちが)いは、食事方法(しょくじほうほう)だった。
일본과 한국의 식의 제일의 차이는 식사방법이었다.
日本は、式場で場所を変えず、食事をしながら、式を見守(みまも)るが,
일본은 식장에서 장소를 안 옮기고 밥 먹으면서 식을 지켜보지만
韓国は、式をさっさと終(お)わらせ、すぐにバイキング会場に移動(いどう)してゆっくりと食事する。
한국에서는 식을 후딱 끝내고 곧 뷔페에 이동하고 천천히 식사한다.
だから、韓国では何組(なんくみ)ものカップルが違(ちが)う部屋で同時(どうじ)に式をあげる事ができる。
그래서 한국에서는 몇 팀이나 되는 커플이 다른 방에서 동시에 식을 올릴 수 있다.
当日、控室(ひかえしつ)には、私以外(いがい)に花嫁(はなよめ)さんが、4人いた。
당일날 대기실에는 나 빼고 신부들이 4명 있었다.
まるで、美容室(びようしつ)にいるように鏡(かがみ)の前に座(すわ)り、それぞれの衣装(いしょう)を着(き)ている。
마치 미용실에 있듯이 거울 앞에 앉아 각각의 의상을 입고 있다.
不思議(ふしぎ)な光景(こうけい)だなぁ、私は夢(ゆめ)の中にいる気分(きぶん)だった。
신기한 광경이네, 난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隣(となり)にいる花嫁さんが、赤ちゃん(娘、当時1才)を抱(だ)いている私の花嫁姿(はなよめ)を見て、親指(おやゆび)を立(た)てて、いいねしてくれた。
옆에 있던 각시가 아기(딸 당시 2살 )를 안고 있는 내 각시 모습을 보고 엄지 척해주었다.
私も慌(あわ)てて、良いねを仕返(しかえ)す。
나도 급히 엄지 척 돌린다.
そんな風(ふう)に褒(ほ)め合(あ)う花嫁5人
그런 식으로 서로 칭찬하는 각시 5명
あまりに面白(おもしろ)くて現実(げんじつ)とは思(おも)えなかった。
너무 신나는 일이어서 현실이 아닌 곳 같았다.
2回も結婚式をあげて羨(うらや)ましい?
2번이나 결혼식을 올리고 부럽다?
とんでもない!
당치도 않다!
正直(しょうじき)なところ、式の間中(あいだじゅう)、私は悲鳴(ひめい)をあげていた。
솔직히 말하면 식이 진행되는 동안 난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バージンロードを歩いている時は、3才の息子の「オンマー!オンマー!」の叫び声(さけびごえ)
버진로드를 걸을 때는 4살 아들의 “엄마~!엄마~!”의 외침소리.
牧師(ぼくし)さんの誓(ちか)いの言葉の後(うし)ろで、授乳(じゅにゅう)を待(ま)つ娘のオンギャ〜オンギヤ〜の泣き声が聞(き)こえる。
목사님의 맹세 말씀 뒤에서 수유를 기다리는 딸의 응애~응애~울음소리가 들린다.
記念写真(きねんしゃしん)の時、娘は泣き疲(つか)れ、息子は別(べつ)の式場(しきじょう)を歩(ある)く花嫁に「オンマ〜!オンマ〜!」と叫(さけ)んでいた。
기념사진을 찍을 때 딸은 너무 울어서 뻗어버리고 아들은 다른 식장을 걷는 각시에게 “엄마~! 암마~!”하고 외치고 있었다.
段々(だんだん)膨(ふく)らみ、はち切(き)れそうな胸(むね)の痛みを堪(こら)えながらバイキング場で挨拶回(あいさつまわ)りしたほろ苦(にが)い思い出(おもいで)。
점점 부풀어 오르는 가슴 통증을 참으면서 부페장에서 인사를 돌았던 씁쓸한 추억.
だけど、この文章を書く私は満(み)ち足(た)りたほほ笑(え)みを浮(う)かべている。
그러나 이 문장을 쓰는 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人生(じんせい)の珍味(ちんみ)を味(あじ)わえたというか。
인생의 진미를 맛볼 수 있었다고 할까.
そして、教訓(きょうくん)を得(え)た。結婚式は子どもが生まれる前に!
그리고 교훈을 얻었다. 결혼식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