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둘이랑 일본에서 배 타고 한국으로 들어갈 때였다
배 출항 시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
각자 고른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한국말 오랜만이네’ 속으로 반가워서 일행을 봤다
남자 하나, 여자 4명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향해 시간을 때우러
카페로 들어온 모양이다
일행도 옆에 앉은 우리 가족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럴 때 곁눈으로 슬그머니 흘겨보는 타입인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대게 어색하다
시선을 옮겨서 멀리를 바라본다
‘일본인? 한국인? 아이들은 한국인 같은데
엄마는 일본인처럼 보이네’
내 상상이지만 이렇게 생각했었지 않을까
남성이 일본어와 한국말을 쓰면서
여성들에게 메뉴를 설명하거나 주문을 돕는
가이드역할을 맡았다
남성은 목소리가 크고 의기양양하다
가이드 역할 사명을 기쁨으로 다하고 있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에너지가 어마어마하시다’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보는 표준 남을 일본에서 마주치면
에너지 남으로 바뀐다
그만큼 일본은 조용하다
옆자리 일행도 무사히 음료를 주문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아이들은 일본에서 보기 힘든 와이파이 있는 카페가 좋아서
저마다 아이패드 삼매경이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일본을 떠나는 아쉬움을 만끽한다
얼른 한국 내 집에 돌아가 자기 이불, 베개로
아침까지 푹 자는 행복을 상상해 본다
떠나는 서러움과 돌아가는 설렘
이 두 마음을 내가 지금 먹는 라테처럼 휘저으면
거기에는 감성이 생긴다
감성은 흰색이었다가 검은색이었다가
섞여서 회색으로 변하면서 파란색 하늘로 날아간다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그 순간은 다가왔다
“Are you a man or a woman?”
목소리 들리는 쪽을 보니 옆자리 가이드 역할 맨이 딸 옆에 서 있었다
“Are you a man or a woman?”
“Are you a man or a woman?”
1번은 딸을, 또 한 번은 나를 보며 번갈아 물었다
딸은 어리둥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달라는 식으로 내 눈을 바라본다
딸아, 엄마도 난감하다
너무 놀라면 사람은 웃는다 일단 웃었다 “하하하…”
난 영어 못한다, 그러나 man, woman쯤은 알고말고… 그러니까…
남자니? 여자니?
근데 이걸 왜 물어? 궁금해서?
궁금하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까?
딸에게? 나에게?
하긴 딸은 초6이지만 키가 160을 넘는다
손질 안 한 풍성한 눈썹의 주인이며 긴 머리카락을 묶어서 앞에서 보니 단발처럼 보였다 (물론 바지를 입었다)
남자 시선이 향하는 딸한테 하는 질문인 걸 깨달아 “딸이에요”라고 내가 말하자
남자가 “어, 한국분이네요! 내가 옆에서 보니 딸님이 너무 멋져요!! 이목구비 반듯하고 대게 잘 생겼어요! “
딸을 보니 당환스럽고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음을 뛰우고 있으나 동공이 흔들리고 어이가 없어 입이 헤 벌어졌다
남자는 이어서 말했다 “나도 두 아들이 있는데 이렇게 잘 생겼어요 ” 하면서 핸드폰을 내밀어 사진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마치 배우처럼 몸짱을 자랑하는 바디를 단추 푼 흰 셔츠에서 들어낸 잘 생긴 남자가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른 사진도 마찬가지로 젊은 남성이 환한 웃음을 뛰어 한국 남성미를 주저 없이 발휘해 있었다
“이쪽이 첫째 이쪽이 둘째예요 잘 생겼죠!!”
나와 딸은 그 맨이 듣고 싶은 모함적인 대답을 해야 했다
“네 정말 배우처럼 잘 생겼어요”
나는 아직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을 못한 채 대답했다
하필 왜 이 guide man는 눈앞에서 쓴웃음을 지으며 지켜보는 아들이 아니라 딸에게 ‘이 남자 잘 생겼다! 남자였다면 짱이다!! ’고 칭찬하는가?
아들에게 말해줘야지 아들에게!!
아이러니한 이 흐름을 이 man는 모른다
모르니까 하는 거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 man을 싫어하지 않았다
본인이 나쁜 마음이 있어서 다가온 게 아니라 정말 ‘딸이 자기 아들처럼 잘 생겼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왔다
이해한다 그래서 좀 귀엽기도 하고 이래야 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남자는 내 딸이 잘 생겼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나의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만족했는지 제자리에 돌아갔다
일행이 카페를 나간 후 딸이 말했다
“엄마 그 사람 이상해, 실례한 거 같아”
딸은 조금 울고 있었다 그리고 묶어든 고무를 당겨 머리를 풀고 긴 생머리 woman으로 변신했다
누가 봐도 어여쁜 긴 생머리 울 딸
딸 눈시울이 촉촉한 것을 보고 나서 이제야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Man는 자기 아들 둘 잘 생긴 것 보이고 싶었고 딸을 극찬했으나 결과적으로 딸이 울었다
칭찬을 하는데 무례한 사람
칭찬을 하면 할수록 상처 주는 사람
아쉽다 아쉬워, 본인만이 모르는 거다
이 일로 인해 나는 딸이 얼마나 예쁘고 여성스럽고 매력덩어리인지를 딸이 그날 잠들 때까지 계속해야 했다
난 그때 “넌 무례하다 “고 했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배웠다
아무리 궁금해도 아무리 칭찬이라도 아무리 자랑하고 싶어도
조심 또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