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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Jan 03. 2017

이탈리아#11 여행 그 후

Bring home a piece of Italy - 2014년, 봄

지난 봄,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책을 잔뜩 샀는데 결국 다 읽지 못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의 여운을 좀 더 오래 끌고 싶어서, 그러면 뭔가 좀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쌓아둔 책을 한 권 두 권 집어들었다.


이탈리아 기행(1~2 합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민음사 / 2013.04.19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펜을 들어 노트에 베껴쓸 수밖에 없었던 문장들. 여행의 A부터 Z까지 모두 이 책에 들어있다. 분명 나도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어쩜 이런 문장으로 이렇게 풀어낼 수 있을까, 감탄스럽기 그지 없다. 난 왜 저 1/100도 못 쓸까 하며 한숨도 포옥.


1부 칼스바트에서 로마까지 p.56 

내게 필요한 것은 다시 세상 일에 관심을 갖고, 나의 관찰력을 시험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의 학문이나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나의 눈이 맑고 순수한지, 얼마나 많은 것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 나의 정서 속에 각인된 주름을 원상태로 지워버릴 수 있는지 여부를 음미해야 한다. 스스로 신변의 일을 처리해야 하고, 항상 조심스럽고 침착해야만 한다는 현실이 벌써 요 며칠 사이에 예전과는 전혀 다른 정신적 탄력을 준다. 이전에는 다만 생각하고, 목표를 세우고, 기획하고, 명령하고, 받아쓰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몸소 외환 시장에 신경을 쓰고, 화폐를 바꾸고, 돈을 내고, 메모도 하고, 편지도 써야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여행을 떠나야 하는, 떠나고 싶어하는 까닭이다.


1부 칼스바트에서 로마까지 p.58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다. 저 진저리 나는 날씨에 시달리면서 꾹 참고 지나온 오래전부터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이 영원한 자연적 필연으로서 언제든지 누려야 마땅한 이 기쁨을 이례적인 것으로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눈 가는 모든 것이 새삼스러워지는 순간.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지고,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새로워지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의미를, 느낌을 찾는 순간. '여행'이라는 건 공간이나 시간에서 멀어지는 개념이 아니라, 저 찰나의 순간을 뜻하지 않을까.

 

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에서 p.364

여러분의 사랑이 나의 길동무다.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언제나 필요하다. 나는 어젯밤 집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는 꿈을 꿨다. 아무래도나의 꿩배는 여러분 곁 말고는 어디도 짐을 내릴 곳이 없나보다. 그렇다면 더더욱 훌륭한 짐을 싣고 가야겠다!

재미있는 대목이다. 도망치듯, 스스로를 유폐하듯,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동이 트기 전에 짐을 챙겨 떠나와 친구들의 사랑이 필요하다 말하며 절절한 그리움을 털어놓는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늘 이중적이다. 고립되고 싶어하면서도, 온기를 그리워 한다. 혼자 있길 원하면서 사람들을 생각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다짐했다. 계속 여행을 떠나자.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잠시 '여행'의 느낌적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을 잔뜩 만들자.



            

로마인 이야기 15/완결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7.02.06


읽는 내내 이 책을 다 읽고 포로로마노를 걸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웠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계속 떠오르는 건 '다름'에 대한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 다른 방식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승자의 너그러움 또는 여유에 기반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마저도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해졌다. "남자란 무릇~~", "사람이란 본디~~"하는 식의 표현이 굉장히 많은데, 내겐 그 내용이 딱히 당연하게 와닿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가르치는 투에, 언뜻 보이는 세계관까지 매우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특히 카이사르 부분) 1년에 한 권씩, 결국 15권을 마쳤다는 사실만큼은 박수를. 정말 대단하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2.05.20


베네치아 이튿날, 바다 바로 한 발자국 앞에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사람 손으로 이런 도시를 일궈냈을까 싶어 한참을 앉아있었다. 절박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보다 더한 절박함으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합리성, 용기, 의무와 책임. 공공심은 그 절박함이 만들어낸 소산 아닐까. 안타까운 점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 지라도 시대가 변화하는 한 '흥'에 이은 '망'을, '성'에 이은 '쇠'를 맞이할 수밖에 없단 사실이다. 그나저나, '베네치아에게'라는 표현이 자꾸 나와 몰입을 방해했다. 처음에는 베네치아를 인격으로 대한 줄 알고 번역의 묘미에 감탄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꾸 이렇게 '우리말 바로 쓰기'에 나올 법한 것이 눈에 걸리는 건 직업병이 틀림 없다.



콘스탄티노플함락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2.09.10


재미있는 세계사 수업을 듣는 기분으로 3부작을 모두 읽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1453년이라는 게 나도 모르게 외워졌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무대에 허구의 인물을 슬쩍 끼워넣는 재주가 탁월!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1.12.20


로마인 이야기에서 이미 한 차례 보여준 특정 인물(카이사르)을 향한 찬양이 이 책에서 절정을 달한다. 알라딘행 확정!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2.06.20


대학생 때 독후감 과제를 위해 '군주론'을 읽었는데, 그 책을 쓴 사람이 이러했구나 싶어 내내 신기했다. 한 가지 더! 피티궁전에서 베키오 다리, 그리고 우피치 궁전으로 이어지는 그 길이 무척 생생하게 떠올라, 그곳에서 살았을 마키아벨리가 그림처럼 눈 앞에 선했다.




르네상스의 여인들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1.12.30


기억에 남는 여인이 한 명도 없다. "여자란 모름지기..."하는 대목만 나오면, 아니 대체 이 작가는 무슨 생각을 가진 걸까 싶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알라딘행!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1.09.20


인상깊었던 대목 하나 없는 건, 비슷한 내용의 책을 몰아 읽은 내 잘못이려니...




신의 대리인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1996.05.15


바티칸 투어를 떠올리며...


주홍빛 베네치아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3.11.20


전쟁 3부작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 허구의 인물을 끼워넣는 방식의 책. 비교하자면, 이 책에 와서는 개연성이 급하락한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상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9.07.07


공간상으로도, 시간대로도 범위가 넓어져서 그런가. 읽는 내내 산만했다. 그래도 사진 보는 재미는 쏠쏠.

  



십자군 이야기 세트

시오노 나나미 / 문학동네 / 2012.06.25


그래, 이제 나나미 여사의 책은 그만 보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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