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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Jan 20. 2017

프라하#1 안녕 프라하

Bring home a piece of Prague - 2015년, 가을

2015년 9월 23일 수요일


사실 지금 모습은 어젯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씻고, 얼굴엔 마스크팩을 종아리엔 휴족시간을, 양손은 키보드 위에, 오른편엔 시원한 맥주캔. 장소만 바뀌었는데도 뭔가 다르다. 이 느낌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닐까.


여행 전날엔 십중팔구 밤을 새는 편이다. 휴가 전에 일정 부분 마무리하고 싶은, 그러나 늘 마무리는 또다른 시작인 게 뻔한 일들을 하고, (그제서야) 짐을 차곡차곡 싸노라면 시간은 금세 흐른다. 가져갈 책을 고르다가 좋았던 구절을 다시 본다거나, 팟캐스트 들으며 빈둥빈둥 게임을 한다거나, 이 옷 저 옷 갈아입어보는 일도 물론 포함된다. 이 편이 비행기에서 푹 잘 수 있고, 시차 적응에도 도음 된다는 변명거리도 충분하니 뭐 어때.


역시나 이번에도 꼬박 밤을 새고 공항으로 향했다. 연휴보다 조금 앞선 일정이라 아직까진 그리 북적대지 않는다. 라운지에서 와인 한 잔으로 취침 1차 준비 완료!


떠나는(혹은 돌아가는) 사연도 마음도 각양각색. 여기 아닌 그곳에서 다들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마주치길. 아, 물론 나도 포함이다.


여행자의 글을 읽으며 그래 나도 이런 마음이었지 끄덕거리고,


유쾌한 영화 한 편을 본다. 사랑스러운 멜리사 맥카시 덕분에 엔돌핀도 잔뜩 충전했다. 물론 꾸벅꾸벅 기이한 자세로 졸다깨다는 기본 옵션이다. 옆자리가 비어 다리 뻗기 자세도 맘껏 즐겼다. 


틈틈이 창 밖을 내다보는 일도 빠질 수 없다. 짙은 하늘색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하늘의 색, 신기한 모양의 구름들, 그리고 바람에 구름이 달려가고 모이고 다시 흩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며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러니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창가 자리를 고수할 수밖에.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 붉은 벽돌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소형차, 그리고 트램이 오간다.

드디어 유럽, 프라하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지극히도 현실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입국 심사대의 줄은 0.5배속 화면 속에나 나올법한 손놀림 덕분에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인천공항 만세), 겨우 통과한 후에도 Vodafone 매장의 유심 카드 구매 줄을 맞닥뜨려야 한다.  소액 인출 가능한 ATM 찾아 삼만리까지. AE 티켓을 사들고, 버스를 타고, 덜덜덜드르륵덜덜덜 요란스러운 캐리어 소리와 함께 돌길을 걷는다.




에어비앤비는 처음이다. 
숙소 찾기는 한 번에 성공했다.

역시 난 길눈이 밝다. 이만하면 좌뇌와 우뇌의 균형이 훌륭해. 이러니 운전도 잘 할거야!!


Marketa의 아파트에는 미리 전달받은 대로 그녀 대신 남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날 괴롭히던 캐리어를 번쩍 들어 3층까지 옮겨주고, 주변 맛집이며 마트 소개까지. 심지어 잘생겼다. 너무도 훌륭한 집주인 남동생이여!! >_<


집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설명을 듣던 중에 Marketa가 등장했다. 화사한 웃음이 잘 어울리는 언니(라고 부르자...)가 너무도 반갑게 맞이해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인터넷으로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은 게 다인데, 아는 사람을 만난 반가움이 밀려와 조금 놀랐다. 음, 이 맛에 다들 에어비앤비를 하는 거구나. 그런데 내겐 너무도 정겹고 다정하던 이 언니가 남동생에겐 전혀 다른 어조로 "이거 설명해줬냐 저거 말해줬냐"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 여자의 두 얼굴이라니.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훈남 동생에게 나도 으쓱. 이봐 훈남 동생, 원래 누나에게 남동생이란 존재는 그런거야. 나도 내 동생한텐 어마무시하다구.

Marketa의 에어비앤비


천천히 둘러본 Marketa의 아파트는 cozy 그 자체로 사진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네스프레소 캡슐커피까지 사진과 똑같았다!


생각지 않았던 웰컴보드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Enjoy it!

자 그럼 얼른 나가서 한 바퀴 돌아볼까. 돌아오는 길엔 저녁거리도 사고 장도 봐야한다.


첫 발걸음은 언제나 광장이다. 구시가지 광장에 오니, 2010년 처음 프라하에 왔던 기억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지금과 비슷한 시간대였고, 부다페스트에서 막 프라하로 넘어온 참이었다. 비까지 내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목격한 후, 마주한 프라하의 야경은 정말이지 현실감 없었다. 틴 성당은 디즈니 영화 속 한 장면 같았고, 프라하성과 블타바강은 시대를 잊게 했다.


5년만에 다시 온 프라하. 후광과 감동이 덜한 대신,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가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들, 내일은 어느 골목으로 가볼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다비드 체르니의 작품이 안녕 인사한다. 제목은 'In Utero'인데, 내일 낮에 와서 한 번 더 봐야겠다.


빌 브라이슨 책에 나오는 것처럼, 유럽은 집이나 호텔은 춥지만 식당이나 바는 따뜻하다. 으슬으슬해지는 기운에 실내 온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리곤 씻고, 얼굴엔 마스크팩을 종아리엔 휴족시간을, 양손은 키보드 위에, 오른편엔 시원한 맥주캔.


맥주의 나라에 왔으니 1일 1맥주를 시전하는 게 목표인데, 아 이거 조금 알딸딸해진다. 아쉽지만 오늘은 0.5맥주만 하는 걸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전에, 내일은 구시가지를 천천히 오래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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