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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Jan 26. 2017

프라하#4 집 떠나면 고생

Bring home a piece of Prague - 2015년, 가을

2015.09.26. 토요일


첫 프라하 여행을 떠올리면 늘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체스키크롬로프에 다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늘 그 아쉬움을 덜어내려 한다.

우버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이른 아침, 한적한 Na Knížecí 버스터미널


노란색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까만 설탕물 같은 핫초코를 한 잔 받아, 어제 마트에서 사온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스치는 창밖 풍경을 보며,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거짓말처럼, 이 풍경을 보고 있는데 <바람이 분다>가 흘러나왔다.


잠시 들른 체스키 부데요비체 터미널. 버드와이저 원조 격인 부드바이저 맥주 공장이 있는 도시다. 혹시나 눈에 익은 뭔가를 보게 될까 창밖을 살피는데, 각자의 누군가를 마중 나온 이들이 눈에 띄었다. 눈길을 오래오래 잡아끄는 장면이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3시간여를 달려 체스키크롬로프에 도착했다. 흐린 하늘 탓일까 어딘지 모르게 울적한 기분을 떨치려고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체스키 크롬로프로 들어가는 문. 저 문을 들어서면 중세가 펼쳐진다.


펜션 FABER

경사 가파른 돌길 투성이인 체스키에서, 좀 더 캐리어를 덜 끌고 다닐 수 있는 호텔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펜션 FABER를 예약한 건 바로 이 방에 딸려 있는 옥외 테라스 때문이었다. 체스키 크롬로프 성이 보이는 풍경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단 기대감에 이곳을 예약했고, 실제로 멋졌다. 흐린 날씨가 생각보다 춥다는 것만 제외하면.


라디에이터를 켜고 커튼을 닫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잠시 언 몸을 녹이고, 숙소를 나섰다. 아직도 오전인 걸 보니 오늘 하루는 꽤 느리게 흘러갈 심산 같다.


블타바 강이 굽이치는 곳에 위치한 체스키 크롬로프는 세로로 기다란 모양의 작은 마을이다. 중턱보다 살짝 높은 곳에 위치한 숙소를 나와 잠시 고민하다가, 오르막길을 걸었다. 체스키 크롬로프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생각보다 성은 꽤 넓었고, 성 안에 있다던 식당은 문이 닫혀있었다. 눈앞엔 아기자기하고 예쁜 광경이 펼쳐졌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햇살이 따뜻했으면, 공기가 덜 차가웠으면, 몸과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웠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체스키 크롬로프성


낙엽 던지고 까르르 웃던 귀요미


맛있는 샌드위치 싸 들고 산책 나오면 좋았을 텐데.


곰들도 추운지 구석에 웅크리고,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안으로,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간 돌아 나오는 길이 너무 힘들겠단 생각에 성을 빠져나왔다. 오후 2시.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해야 한단 생각에 이번엔 숙소를 지나쳐 마을 아래쪽으로 갔다.

이발사의 다리 옆에 있는 레스토랑


맥주 한 잔을 곁들인 점심, 그리고 뜨레들로를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먹었으니 좀 더 걷자. 이번엔 더 아래쪽, 광장으로 향한다. 이들에게 오늘은 무슨 날인 걸까. 광장은 노점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갖가지 모양의 치즈


전병처럼 얇은 반죽에 악마의 누텔라잼을 발라먹는 팔라친키.


오늘을 위해 한참을 준비했겠지. 광장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선 아이들의 공연이 한창이다. 객석 앞줄은 누가 봐도 가족 같은 이들이 앉아 공연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조금 걸었더니 그새 발목이 아파와 공연을 본다는 핑계 삼아 나도 슬쩍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여자아이를 리드해가며 열심히 춤을 추는 아이에게 박수를 보내며.


다시 좀 더 여기저기 골목을 뒤져보다가, 끝내 백기를 들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지쳐있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곳에 와 있는데도 설렘은커녕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후 5시도 채 되지 않는 시각. 숙소로 돌아오니 아까보다 방은 데워져있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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