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ng home a piece of Prague - 2015년, 가을
2015.09.27. 일요일
푹 잔 덕분에 한결 몸이 가볍다. 오늘 날씨도 어제처럼 우중충하려나... 이른 새벽하늘은 좀처럼 속내를 알기 어렵다.
우아하게 일기를 쓰면서 하루 시작!
아침 산책을 나섰다. 어제에 이어 다시 체스키크롬로프 성으로. 가벼워진 내 발걸음 때문인지, 이른 아침이라 한적했기 때문인지 분명 어제의 그 장소인데 새롭게 느껴졌다.
분명 어제도 본 곰인데, 오늘 만난 넌 좀 달라 보여.
종탑으로 오르는 길.
계단을 다 오르니 펼쳐진 풍경
왼쪽 구석에 보이는 옥상 테라스가 어제 하루 우리 집!
아껴둔 종탑에 올랐다. 아무도 없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좀 무서웠지만, 그 덕분에 시원한 바람과 아기자기한 풍경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 흘러와 말굽처럼 휘돌아 흐르는 블타바 강을 보니, 나도 그곳과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지치고 외로웠던 거구나, 늦게서야 깨달았다. 어제의 나는 외딴곳에 홀로 뚝 떨어져 있었는데, 강물을 보는 순간 끈 하나를 발견한 듯했다.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 어딘가와 이어져있는 끈.
도브리덴~
기운차게 성을 나와 숙소로 가는 길. 할아버지들 아침잠 없으신 건 만국 공통인가! 모닝커피 한 사발 들이켜고 계신 할배들이 손짓하는 카페로 들어섰다. 생각하지 못 했던 멋스러운 실내에 신나서 기웃기웃.
백만 불짜리 아침 식사
다시 숙소 테라스.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아란 하늘이다!! 카페에서 사온 디저트로 아침을 대신하며 메모를 끄적였다. 난 이제 짐을 싸야 하는데 파란 하늘이라니...!!! 커피를 다 마시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또다시 끓인 물이 식을 때까지 이 테라스에서 머물렀다. 체크아웃하기 전에도 테라스에서 하늘 보며 안녕.
숙소에 캐리어를 맡기고 다시 뚜벅뚜벅.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놀았으니 점심 영양 보충도 성실하게!
날씨가 좋은 날엔 보트!
점심 먹고 나니 더 맑아진 하늘
강변에 있는 식당에서 역시나 느~긋한 점심을 먹었다. 뭐지, 오늘은 점심마저도 어제와 달리 맛있다. 이건 날씨나 컨디션 탓이 아니라구!! 새삼 어제 본 것만으로 이곳을 기억하는 게 미안하고 아쉬웠다. 버스 출발까지 3시간 정도 남았으니, 이번엔 골목 산책에 나섰다.
꼬맹이가 자기도 찍어달라며 냉큼 달려와 포즈를 따악!
황금소로 같았던 골목길. 강으로 향한다.
강변에선 역시 맨발!
커피 한 잔 더. 이젠 막 해가 나기 시작한다.
숙소에 들러, 아까 맡겨둔 캐리어를 챙겨 나가는 길. 안 그래도 돌길 오르막에서 캐리어를 어찌 끌고가나 한숨이었는데 친절한 호스트가 혹시 택시 필요하니 묻는다. 네 물론요 완전완전 필요해요!!! 내 컨디션은 내가 돌보자는 게 어제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급기야 이 교훈은 마지막 날 우버 블랙으로...)
내 눈엔 세상 최고로 예뻐 보였던 빨강 택시
터미널에서 프라하행 버스를 기다리며.
점차 날이 갠다. 체스키 크롬로프의 오후는 눈부셨다. 어제 같은 하루가 필요했다는걸, 비단 날씨 탓만은 아니었단 걸 알기에 반짝이는 체스키를 눈에 꼭꼭 담는 걸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래도 아쉽긴 했단 얘기다.
다시 프라하. 그새 정든 건지 낯익고 반가운 풍경이다. 구시가지에서는 그저 뚜벅이 두 다리면 거뜬했는데, 이쪽 강 건너편에선 스케일이 다르다. 트램에 오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에피톤 프로젝트의 "트램을 타고 달리는~~"을 흥얼거렸다. 뻔하지만 어쩔 수 없는 흥얼거림이다.
프라하에서의 두 번째 숙소는 오래된 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디자인 호텔, Domus Balthasar다. 카를교 바로 앞에 있어 접근성 좋고, 트램 정거장과도 멀지 않으며, 비록 조식은 없지만 맛있는 베이글 가게가 1층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늑하고 멋진 뷰의 다락방이 있었다.
낑낑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면
이렇게 멋진 다락방이 짜잔 맞이한다.
창문을 열면 프라하성이 빼꼼!!
숙소 구경, 창밖 구경을 하다 보니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있자니 계속 귀가 밖으로 쫑긋거려, 결국 후다닥 계단을 내려갔다.
음악소리의 주인공. 유쾌했던 사람들.
숙소 코앞에 있는 벨벳 맥주 맛집 '우 말레호 글레나'. 벨벳 맥주가 다 떨어졌다길래 그냥 저녁만 먹었는데 베니건스인 줄!! 그래도 맛있었다.
너무도 프라하스러운 프라하의 밤거리.
프라하에 온 지 5일째. 여태 카를교를 건너지 않았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주변만 실컷 맴돌았다. 그러다 보니 희한하게도 아껴놓고 싶고, 발걸음에 의미를 두게 된다. 배도 부르고 바람도 좋은 이 밤, 카를교에 올랐다.
몇 년 전에 찾았던 프라하가 내게 남긴 한 컷은 바로 이 풍경이다.
동화 같은 카를교를 이리저리 오가며 꽤 오랫동안 밤 산책을 즐긴다. 강물은 은은하게 불빛을 담아내며 흐르고, 복잡했던 생각들도 그에 실어 흘려보낸다.
숙소에 돌아오니 이게 웬걸. 방에 불이 들어오질 않는다. 호텔 매니저가 이리저리 방법을 찾는 동안, 방문을 열어놓고 한편에 쪼그려 앉았다. 조바심이 나긴 커녕, 이 상황이 재밌게 느껴졌다. 시간을 조금 더 붙들어놓고 싶었던 걸까. 30분쯤 후 문제는 해결됐고, 길었던 오늘 하루는 아쉽지만 여기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