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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May 04. 2017

프라하#8 꿈결같은 시간

a piece of Prague

2015.09.30. 수요일
어느덧 이 여행도 마침표가 다가오고 있다. 푸른 하늘과 기분 좋은 바람에 감사해하며, 부지런히 길을 나선다. 좋았던 곳에 또 가볼까, 새로운 곳에 가볼까. 고민하다 메트로놈을 보러 레트나 공원으로 향했다.

트램을 기다리는 프라하의 패피 할머니들.

구시가지와 달리 한적한 레트나공원 입구. 엄청난 계단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는!! 무서운 사람들.


지난밤 공원의 흔적들.


프라하에서 찾은 두 번째 공원이다. 스트렐레스키 섬이 밝고 곧은 느낌이라면, 이곳의 첫인상은 방황하는 10대들의 은신처 같았다. 곳곳을 장식한 그래피티와 나뒹구는 와인병. 어딘지 모르게 짝다리로 껌을 질겅질겅 씹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

레트나 공원에서 바라본 프라하 구시가지.

프라하의 가을.


레트나 공원의 상징은 거대한 메트로놈이다. 스탈린 동상을 폭파하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프라하의 하늘과 구시가지를 똑-딱-똑-딱 오가는 메트로놈 바늘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문득 이번 여행은 저 메트로놈의 박자와 들어맞는단 생각이 들었다.



메트로놈을 뒤로하고, 블타바 강변을 걷는다.

이것은 코젤 직영점! 일단 들러 맛 좀 보고요. 직영점에서 먹는 코젤은 어딘가 좀 달라!!


스메타나 박물관


기분 좋게 블타바 강변을 계속 걸어내려가다 멈췄다. 스메타나 박물관이다. 이 앞에서 보는 카를교-프라하성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싶어 몇 장 사진을 찍다가, 문이 열린 걸 보고 빼꼼 들어가 봤다.

그가 연주하던 피아노가 전시돼 있고, 대표적인 작품 악보가 오케스트라 대형으로 늘어서 있다.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심심하셨는지 박물관 할머니가 다가와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더니, "자네 피아노 좀 칠 줄 아나, 그럼 한 곡 뽑아보게"하며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덥석 열어주신다. 아,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어안이 벙벙한데, 어느새 할머니는 포토그래퍼로 변신해 사진이며 영상까지 멋진 앵글로 잡고 계신다. 

얼떨결에 ' Vltaba' 메인 선율 건반을 더듬더듬 누르는데, 콩닥콩닥하던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지금 여기 이곳에서 내가 정말?? 꿈같은 순간도 잠시, 몇 소절 못하고 "더는 몰라요"하자 할머니가 물개박수로 "스메타나 아닌 다른 것도 괜찮아."해주신다. 뭐 어때, 당장 생각나는 게 'goldberg variation no.1'이라 시작했는데, 손가락이 끝까지 기억하고 있다. 마법에 홀린 것 같았다. 지금도 사진을 들여다보면 한참 후에야 꿈이 아니었구나 싶고, 그제야 가슴이 두근거린다.

'Vltaba' 악보 너머로 보이는 블타바강과 프라하성. 이곳에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인데 말이지. 엉엉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두둥실 걷다가 잠시 진정하려고 카페에 들렀다. 그냥 들어간 카페인데 이거 보통 카페가 아닌 느낌!

커피와 진한 초코케이크를 먹으니 이제야 정신이 좀 든다.


가게 구석구석이 느낌 천국


배를 좀 채우고, 정신도 차렸으니 다시 go!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쏘다니기 시작!

다비드 체르니 안녕. 오후라 그런지 한산한 하벨 시장에서 기념품도 몇 개 사고~


레고 숍에 들러, 잘은 모르지만 친구 줄 선물도 하나 찜! 골목 분위기에 맞춰 작품 스타일도 달라진다.


슬슬 다리가 아파질 무렵. 책에서 봤던, 프라하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축물을 보러 갈까? 물론 가장 오래된 건 프라하성이다.

U Kunstatu


지금 이곳에선 펍을 운영 중인데, 뭔가 이상하다. 스메타나 박물관도 그렇더니, 이곳에도 사람 한 명 없다. 다들 어디로 가셨나요, 여기 문 연 거 맞긴 맞나요. 애매한 표정의 나를 보더니, 역시나 여기서도 직원이 200% 친절하게 대해준다. 뭐 어때 전세 낸 셈 치고~! 책에서 본 대로 니네 지하실 구경해도 되냐 물어봤더니 흔쾌히 ok를 외치곤 따라오란다. 

컴컴한 계단을 따라내려가는데 이렇게 따라가도 되나, 내가 이 가게 들어온 걸 본 사람이 있긴 할까 싶어서 멈칫멈칫. 그러나 여전히 친절한 직원 아저씨는 여기야 맘껏 둘러보고 올라와~ 하며 문 하나를 열어젖힌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 같았다. 돌 하나하나를 만져보고,"아~" 소리 내서 울림도 감상하고, 사진도 찍다가 어라 여기 폰이 안 터지네?? 후다닥 올라왔더니 멋지게 세팅된 테이블 하나가 날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손님은 나뿐이다.


추천해준 맥주 한 잔과 소시지가 오늘의 저녁. 책 한 권을 꺼내 홀짝이는데, 이 맥주 지금까지 프라하에서 먹어본 최고의 맥주다!! 여행 마지막 밤에 생각지 못한 행운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며 나 역시 누군가가 오늘을, 지금을 그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위의 맥주도 함께.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워, 다시 들른 곳은 카페 슬라비아. 여기 압생트도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너무 꿈같은 하루가 날아갈까 두려워 압생트는 살짝만 들어간 오렌지주스를 시켰다. 백발의 멋쟁이 할아버지가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점점 가까워지는 프라하성. 저 다리를 건너면 숙소다. 아쉬운 마음에 느리게 한 발자국, 좀 더 느리게 한 발자국.


카를교 위에서 페트르진 타워와 프라하성을 바라보며 좀 더 느릿느릿.


집으로 향하는 그림자들을 보며, 나도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구나. 오늘은 자기 전에 짐을 좀 싸둬야겠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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