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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Feb 05. 2017

프라하#6 다시 프라하

Bring home a piece of Prague - 2015년, 가을

2015.09.28. 월요일


다시 프라하. 그동안 카를교 동쪽만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니, 오늘부터는 서쪽 탐험이다. 날씨 좋고, 기분 좋고, 백팩 둘러메고 고고씽!


발트슈타인 궁전 정원

이른 아침, 모두들 프라하성이나 카를교로 향할 때 그 사잇길로 걷다 보면 어느새 왼편엔 높다란 담이 이어진다. 담에 어울리지 않게  문은 작고 평범해, 정말 들어가도 되는 걸까 멈칫했다. 안을 빼꼼 들여다보다가 한 발 불쑥 들어서보니, 녹색 천국이다. 잘 가꿔진 정원 곳곳을 구경하며 셀카도 잔뜩 찍고, 예전에 연극도 공연했다는 무대 앞에서 영국 단체 할머니들 틈에 껴서 귀동냥도 잠시. 조각상 알아맞히기 퀴즈로 우쭐대며 다시 길을 나섰다.  알고 보니 정문은 따로 있고, 이건 쪽문이었다.


카프카 박물관

카를 강을 따라 걷는 길. 날씨가 좋으니 래프팅족들이 총출동했나 보다. 헛둘헛둘 기합소리를 맞추며 앞으로 나가는 그들을 보고, 나도 헛둘헛둘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번 프라하 여행 때 오지 못해 두고두고 아쉬웠던 곳, 프라하를 다시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카프카 박물관이다. 조각상은 물론이고 조명 하나까지도 작가를 표현하고 있던, 충실하고 충만했던 공간.


빨간 불에는 건너지 마세요. 좁은 계단길에서 상행선 하행선 꼬일까 봐 신호등을 설치해 둔, 유쾌한 계단길. 아, 물론 나도 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기웃기웃 셰익스피어 서점


걷다 보니 다시 카를교. '프라하 맛집'으로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뜨레들로 맛집이 바로 여기 있다! 얼마나 맛있는지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_< 가히 그 맛은 상상 그 이상!!! 마침 호텔 바로 앞이라, 이후로 일일일뜨레들로 돌입!


카를교 밑을 지나 계속 강을 따라 걷는 길. 어느덧 캄파섬이다. 내 사랑 스트렐레츠키 섬에서 바라보던, 도통 섬 같지 않은 섬이 바로 이곳이다.

가을이 한창이다.


오래된 나무, 눈부신 햇살, 여유로운 사람들. 상투 튼 피아니스트는 멋진 미소와 함께 let it be를 연주했다.


존 레논의 벽

반전, 그리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벽. 하나하나 글귀를 읽다가, '세월호'라는 한글과 마주쳤다.


캄파 섬을 나와, 페트르진 언덕으로 향했다. 푸니쿨라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 천천히 걸어내려올 계획이다.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비

공원 입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조형물. 조금씩 갉아먹혀 결국 소멸하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나는 저 중 몇 단계에 속할까. 온전한 나일까.

무거운 생각으로 푸니쿨라 탑승장으로 향하는데, 이를 어째!

푸니쿨라 운행 정지!!!! 말이 좋아 언덕이지, 서울로 치면 남산이라 할 수 있는데 도저히 걸어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프라하성은 내일 갈 건데 그럼 반나절 동안 뭘 하지, 뭘 한담. 어디로 간담...

비셰흐라드 가볼까?

트램으로 25분 정도, 외곽으로 향했다. 내려보니 건물도, 인구도 밀도 높은 카를교 주변에 비해 표지판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구글맵이 안내하는 대로, 점점 인적 없는 골목을 돌고 돌며 여기 맞나, 내가 과연 잘 온 건가 하는데 갑자기 눈앞이 쨍! 나무 한 그루부터 아우라가 남다른, 이곳은 비셰흐라드입니다.

프라하 이전, 보헤미아 왕국의 영광이 가득했던 곳이다. 비셰흐라드는 시간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나 보낸 후, 이제는 프라하에 왕관을 물려주고 한 발짝 물러서 고요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의 깊이가 곳곳에 서려 있었다.


그리고 여기엔 얀 네루다가, 스메타나가, 드보르자크가 잠들어있다. 이런 곳에서라면 그들의 휴식은 영원히 방해받지 않을 것 같다. 비셰흐라드에 국립묘지를 마련하고, 이들을 품은 그들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오길 잘 했다. 좋은 기운을 잔뜩 얻었다.


우 말레호 글레나

해가 지기 전에 다시 프라하. 어제 못 먹은 벨벳 맥주를 기어코 한 모금 마시며, 오늘 하루를 또 이렇게 마친다. 

내일이면 드디어 프라하성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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