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ng home a piece of Prague - 2015년, 가을
2015.09.29. 화요일
이번 여행을 통틀어, 유일하게 어디에서 무얼 할지 세세하게 생각해둔 날이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에 가서 옛날 도서관 냄새를 킁킁 맡아야지. 프라하성에서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지난번 프라하 여행에서 엄마랑 손 꼭 잡고 햇빛 즐기며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야지. 그때 못 갔던 황금소로도 들러야 해. 무엇보다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의 콘서트홀 중 하나일 만큼 음향효과로 한 이름하는 성 이르지 성당에서, 그것도 큰맘먹고 지갑 열어 미리 예약해둔 가장 좋은 자리에서 연주를 들어야지.
고민할 것 없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스트라호프 수도원.
여기가 바로 스트라호프 수도원.
사진 찍으려고 추가 요금까지, 오늘 돈 좀 쓰는 날이다. 복도가 더 길어 보이는 착시효과를 노려, 원근법 솜씨 발휘한 벽그림이 기발해 찰칵. 복도에서 이렇게 사진 찍는 연습 좀 하다가 옆을 딱 보면,
철학의 방 / 신학의 방
탄성이 절로 나오는 도서관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서 많이 봤던 곳일 수밖에 없는,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나왔던 바로 그 도서관이다. 보통 이렇게 오래된 도서관은 클레멘티눔처럼 조명을 통제하기 마련인데, 여긴 햇살이 그대로 들어오고 있다. 덕분에 벽면을 가득 채운 장서와 햇살 먼지까지, 여전히 살아숨쉬는 도서관을 볼 수 있었다.
스트라호프 수도원 양조장
수도원 한 편에는 직접 운영 중인 양조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흑맥주가 그렇게나 유명하다고 하니, 여기 모닝 맥주 1잔 플리즈~ 오늘도 1일 1맥은 이어진다! 아, 제 점수는 말입니다. 나중에 먹은 코젤 직영점 흑맥주가 100배 더 맛있지 말입니다.
기분 좋게 콧노래 부르며 프라하성 쪽으로 직진!
저기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 아, 날씨 정말 좋다. 하늘 참 이쁘다.
한적한 골목을 이리저리 휘적휘적
어라, 이 휴지통에서 스웨덴의 향기가!!
빵 오빠 다녀가신 식당! 졸리 여사 함께인 걸 보니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촬영 때인 듯?
게슈타포 심문 장소였다던 체르닌 궁전. 그 앞으로 꼬마열차가 칙칙폭폭.
잠시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딱 봐도 우아해 한눈에 들어오는 건축물로 향한다. 로레타 성당이다.
안뇽
<프라하 걷기여행>이란 책에서는 로레타를 소개하면서 "로레타의 울렁거리는 신성을 뒤로하고 잠시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라고 표현한다. 종교에 큰 관심 없는 나조차도 로레타 성당에 앉아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표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요한 울렁거림, 이렇게 사람들은 위안을 얻는 걸까. 종일 그대로 머물고 싶을 만큼 마음 평온한 곳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할 일 많은 날이니 다시 걸음을 옮겨본다. 프라하성을 향해!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골목길
아깐 쩌어~~기 있었는데 이젠 저~기 있는 프라하성
프라하 최초의 가스등
드디어 프라하성 도착!! 당연히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을 거라 각오했는데, 생각보다 한산했다. 그럼 어디 한 번 둘러볼까나~
근데 오늘 하늘 참 버라이어티하지 말입니다.
라이방 좀 써 본 근위병 아저씨
여전히 멋진, 성 비투스 대성당
이 조각 하나하나에 성 비투스 대성당 건축 히스토리가 담겨있다고~
성 비투스 대성당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알고 왔든 모르고 왔든, 그 앞에 사람들이 잔뜩 있든 없든, "어, 이건 좀 다른데"하며 모두가 우러러보게 되는 그것.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신이 아닌 사람이 그 안에 담겨있다. 빛과 함께 만들어낸 색채는 성스럽고, 엄숙하고, 애잔하다. 이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 사람들은 마음이 덜 쓸쓸했을 것 같다. 이 작품이 신을 대신해 그들을 품어 안았으리라. 나도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다른 한 편엔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예배당. 카를교에 있는 이 신부님 조각상을 만지면 프라하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이!
보헤미안 느낌 물씬
언제 봐도 가슴 뛰는 파이프오르간
로레타에 이어 성 비투스 대성당이라니. 신성이 울렁이다 못해 흘러넘쳐, 정말 어딘가 좀 쉴 곳이 필요하다. 황금소로에 가니, '소로'답게 아기자기한 공방이 잔뜩이다.
카프카의 작업실
여기는 프라하, 오버!
큰 숨으로 걸으며, 멀리멀리 시선을 던져본다. 오늘은 정말 하늘 구경이 재미있는 날이다.
멀리 보이는 스트라호프 수도원. 오늘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왔지!
아침 일찍부터 엄청 걸었는데, 정작 흑맥주 한 잔 외엔 먹은 게 없다. 이 동네는 어찌 된 게 어지간한 메뉴는 죄다 고기라, 갑자기 밀가루 금단 증상이 밀려왔다. 느끼한 밀가루가 먹고싶어어어어!!!
프라하성을 잠시 나가서 발견한 반가운 단어 하나, PASTA!!!! 손님 한 명도 없는 가게에 홀로 들어가 최고로 맛있는 파스타를 주문했더니,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가 블루치즈 크림 파스타 자랑을 시작하신다. 그래요 그런 거요!!! 자랑할 만 하십니다. 프라하성 앞 최고 맛집!!
밥 먹었으니 다시 또 돌아다닐 차례. 프라하성 앞, 네루도바 거리에 옹기종기 늘어선 집을 구경했다.
얀 네루다가 살던 집
왜 네루도바 거리냐면요. 얀 네루다가 여기 살았거든요. 어제 비셰흐라드에서 그의 묘지를 봤는데, 오늘 그가 살던 곳 앞에 있으니 기분이 참 이상합니다요.
다들 나처럼 사진 찰칵
재미있는 게, 이 거리의 집들은 모두 대문 위에 각자의 표식을 갖고 있다. 가재 그림이 있는 건물은 예전에 식당이었다고 한다.
기웃기웃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다. 다시 프라하성으로 올라가 볼까.
이렇게 구름이 잔뜩 꼈는데,
몇 분만에 태양과 정면승부 똬앟!
성 비투스 대성당 문이 굳게 닫혔다. 오늘의 내부 관람은 여기서 끝!
보는 사람 없으니 주저앉아 찍은 사진, 각이 살아있네 살아있어!
프라하성은 자정까지 열려 있지만, 그에 비해 성 비투스 대성당을 비롯한 내부 건물 관람시간은 꽤 짧은 편이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각에, 굳이 내가 다시 프라하성으로 들어온 건 성 이르지 성당에서 실내악 연주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내가 그 티켓을 구했기 때문이다!! 우헷 ㅎㅎ
이곳이 성 이르지 성당
짝짝짝!!!
920년에 지었으니, 천 년도 훨씬 넘은 건물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제일 첫 줄에 앉아, 소리 하나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셋 리스트는 파헬벨, 모차르트, 비발디. 힘찬 비발디 연주가 가장 좋았는데, 소리 울림은 가히 예술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음향 수준도, 연주 실력도 한참 낮았던 며칠 전의 스메타나-블타바 공연이 더 마음에 남는 건 왜일까. 심지어 그땐 울기까지 했다. 무엇일까. 이 땅의 힘인 걸까.
그래도 귀가 엄청 호강했다. 여운에 젖어, 이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느릿느릿 숙소로 돌아간다.
저녁에 보는 비투스 대성당은 낮에 본 것과 좀 달라 보여.
좀 놀아본 뒷모습
페트르진 전망대에 불이 밝혀졌다.
지금은 개와 늑대의 시간
또다른 느낌의 프라하 야경
생각보다 금세 어두워졌다.
컴컴한 길이 무서워지던 참에 나타난 구세주! 역시 기승전뜨레들로!
건강한 하루였다 -라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그리곤 정말 푹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