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ha Oct 16. 2016

이탈리아#2 반짝반짝 베네치아

Bring home a piece of Italy - 2014년, 봄

기차역과도, 관광지와도 다소 거리가 있는 유대인 지구에 위치한 숙소라 이튿날 아침은 조용하게 맞이했다. 머물던 기간 동안 동양인은 나뿐이어서 여행 기분도 만끽할 수 있었다. 호텔 정원에서 우아하게 아침을 먹고, 덜 우아하지만 과일을 잔뜩 챙겨 오늘의 산보 시작~! 


 자동차 없이 오로지 배와 두 다리로 움직여야 하는 곳답게 과일이며 식료품 등 각종 물품을 잔뜩 실은 배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섬에서 나온 쓰레기도 배에 잔뜩 싣고 나가 육지에서 처리한다고 한다. 베네치아 사람들의 아침을 보며, 나의 일상을 벗어나 낯선 이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즐거움에 괜스레 들떴다. 남들 일할 때 노는 재미란~! 

숙소 앞에 있는 다리는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아치가 3개 있는 다리여서 Tre Archi라고 부른다. 오늘의 여정은 섬을 바깥으로 반 바퀴 돌아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

이른 시각에 서둘러 나와 사람이 덜 붐볐는데, 해는 벌써 중천에 있는 것 같았다.

바다 같지 않은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언젠가의 상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두 기둥이 관문처럼 서 있는 산마르코 광장으로 들어섰다. 어제 반대 방향에서 걸어 들어갔을 때는 확 트인 곳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확연히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먼저 종탑에 올라 360도 전망을 살피기. 엘리베이터로 쓩 하고 올라갈 수 있으니 체력 부담도 없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보이는 남쪽 풍경은 아무리 봐도 그림 같기만 해서 한참 동안 눈을 꿈벅이며 보고 또 바라봤다.

동쪽으로 가니 산 마르코 대성당과 두칼레 궁전이 한 폭에 담긴다. 

북쪽 방향은 어제 돌아다닌 덕분에 지리가 대강 눈에 익어서 바다 건너 공항부터 호텔, 슈퍼마켓 등등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쪽은 산마르코 광장이다. 내려다보는 순간, 산마르코 광장에 어울리는 천장은 하늘뿐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종탑을 내려와,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방금 종탑에서 봤던 산 마르코 광장의 움직이는 까만 점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 맞은편에서 만만치 않은 역사를 자랑하는 콰드리. 카페 플로리안에 앉아 대표 메뉴인 핫쵸코로 당분을 보충하고, '하나 둘 셋'하고 뛰며 점프 사진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에너지도 보충했다. 야외 테라스에서 시작된 연주에 콧노래 흥얼대며 한참 동안 광장 구석구석을 훑어보기 한참.

산 마르코 성당을 거쳐 두칼레 궁전으로.

탄식의 다리에서 내다본 풍경. 어제 저 바깥에 서서 이 다리를 바라봤을 때는 그냥 이쁘기만 하더니, 다리 안은 갑갑하고 음울했다.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과 피오비 감옥을 잇는데,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가면서 탄식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눈앞의 풍경이 이렇게 눈부시고 아련하니 탄식이 나올 수밖에. 



점심을 먹으러 광장을 벗어나 미리 메모해둔 맛집 Alfredo's fresh pasta to go를 찾아 나섰다. 


구글맵과 트립어드바이저 조합, 거기다 신이 내린 나의 막무가내 걸음이면 못 찾을 길이 어디 있으리. 좁고 어두운 데다가 한적하기까지 한 골목을 몇 번 지나 슬슬 무서워지려는 찰나에 멀리 사람들 북적이는 가게가 보였다. 여기 생면 파스타는 정말 감동이었다. 

이태리 훈남의 꽃미소는 덤이랄까. 


테이블이 따로 없어 적당한 계단에 앉아 본격적인 식사를 하는데, 아 여기도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다시 떠날 차례. 항구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부라노 섬으로 향했다.

- 건축가 정태남  -

"베네치아에서 주변 섬으로 가려면 암초가 곳곳에 있는 바다를 지나야 한다. 말뚝으로 표시된 뱃길은 수없이 검증된 안전한 길이다. 빙 둘러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수없이 검증된 안전한 뱃길'을 만들기까지 이곳엔 어떤 삶들이 있었을까. 이 뱃길 위를 지나며 이름 모를 그들에게 고마웠고, 또한 이름 모를 그들에게 미안했다. 지금 한국은, 진도는 어떤 상황일까.


안개가 많이 낀 날, 먼 바다에서도 집을 찾아 돌아올 수 있도록 등대 역할을 하고 있는 부라노 섬의 색깔들. 


다시 베네치아 본섬으로 돌아온 건 오후 4시 무렵. 구글맵도, 가이드북도 잠시 넣어두고 이따금씩 나오는 이정표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와인을 페트병에 담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와인 종류도 많고, 시음도 가능한 데다가 저렴한 가격까지! 냉큼 화이트 와인을 1.5리터짜리 페트병에 담아 품에 안았다. 그때는 몰랐다. 캐리어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매일 밤 이 페트병을 버릴까 말까 갈등하며 로마까지 가져갈 줄이야. 그때는 그저 신났을 뿐이다. 곳곳에 있는 성당도 구경하고, 중고서적 벼룩시장도 흘깃흘깃. 모든 걸 우연에 맡긴 채 이리저리 헤맸던 이날 이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꽉 채워지는 것 같다.


해가 질 무렵 베네치아 남쪽, 도르소두로 지구로 향했다. 아쉽게도 구겐하임,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휴일이라 다음을 기약했다. 드디어 베네치아, 아니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된 첫 식사다.(호텔 제외)

두근거리며 주문한 음식은 이곳의 명물인 해물 모둠튀김과 오징어 먹물 파스타. 나름 숨은 맛집을 찾겠다며 꽤 고생했는데 다행히도 결과는 성공! 다만 양이 많아서, 튀김은 반도 못 먹고 포장해갔다. 와인 페트병과 튀김을 들고 있자니 어찌나 든든하던지.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도 아직 밖이 환하길래, 낮에 재미 들린 무작정 걷기 모드를 재개했다. 그러다 발견한 곤돌라 조선소. 건조 상태의 곤돌라가 좌르륵 늘어서 있는데, 옛 영광을 쓸쓸히 간직하고 있는 듯 황량해 보였다. 유독 저 공간만 타임워프해 과거에 속해있는 것처럼 아무리 봐도 낯설었던 풍경. 저 옆에는 있는 잔디밭엔 젊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앉아 맥주와 담배(?)를 즐기고 있어, 더욱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푸짐한 Nico 젤라또를 먹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조금씩 날이 어두워졌다. 못 보던 나무 판들이 좌르륵 이어져 있어 뭔가 물어봤더니, 지대가 낮은 곳에선 저녁 밀물에 잠길 때를 대비해 저렇게 도보용 임시 다리를 놓아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수위가 꽤 높아져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떠나야 하는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탈리아#1 첫날은 베네치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