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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Oct 16. 2016

이탈리아#4 나의 첫 피렌체

Bring home a piece of Italy - 2014년, 봄

좋아한단 말이 너무 쉬이 나오는 게 싫어 줄곧 에두르며 아끼다가 끝내 고백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강 너머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두오모,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으로 향했다. 1시간 줄 설 각오로 갔는데 피렌체 카드가 있으니 바로 입장!

컴컴하고 좁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기 전, 마중 나와준 시원한 바람에 먼저 탄성이 나왔다. 숨을 고르고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그제야 눈에 풍경이 들어오고 다시 한번 우와. 무슨 말이 더 필요 있을까.

내가 저길 올라갔다 또 내려왔다니...      

두오모 광장의 산 죠반니 세례당 청동문, 고개를 빼꼼 내민 기베르티도 안녕~



 가죽 시장에 들러 폭풍 쇼핑을 마치고, 잠시 후 기차 안에서 먹을거리도 잔뜩 샀다. 점심 메뉴는 살라미 샌드위치와 말린 과일. 

말린 과일은 종류가 너무 다양해 도통 맛을 가늠할 수 없었는데,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가 다 맛있으니 하나씩 맛보라고 하셔서 입맛에 딱 맞는 걸로 두 봉지나 골랐다. 베네치아에서 산 와인 페트병과 더불어 이번 여행 내내 함께한 최고의 주전부리!


그렇게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피사.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고민했던 일정이다. 피사, 아웃렛, 피에솔레 셋을 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었는데, 결국 피사로 향했다. 

생각보다 탑은 훨씬 기울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빗속에서도 남들 다 찍는 '탑 떠받치기' 인증샷에 열심이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탑으로 향했다. 사탑은 안전을 위해 30분 단위로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그마저도 온라인 사전 예약이 필수다. 그래서 이날의 모든 일정은 피사의 사탑 예약 시각이 최우선 고려사항이었다.


이미 오전에 두오모를 올라갔던 터라 금세 다리가 아파왔다. 게다가 이 '사탑', 안에서 직접 느껴보니 보통 많이 기울어진 게 아니었다. 기울기 탓에 대리석 계단은 중심 잡기 쉬운 지점이 파여있었고, 빗물로 미끄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뒷사람 먼저 보내고, 짧게나마 쉬어가며,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의 구조를 받아 끝까지 올라갔다. 

 


허리까지 오는 난간 하나에 의지해 미끄럽고 기울어진 꼭대기층을 오가는데 정말, 정말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인증샷은 성공!  사탑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보고 있자니 피사를 강력 추천했던 곤삼님이 떠올랐다. 곤삼님의 유럽 여행 에피소드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데, 그것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바로 피사 광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좀 전까진 광장에서 사탑 떠받치기 인증샷 찍는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저들에게도 저 사진이 오래오래 얘깃거리로 남겠구나, 누군가는 나처럼 그 얘길 재미나게 듣겠구나 싶었다. 나 역시 지금 이 여행의 순간순간이 오랜 후에도 눈 반짝이며 말할 수 있는, 빛나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탑에서 내려온 후에도 세례당과 성당을 꼼꼼히 둘러보고 기차역까지 30분 남짓을 걷느라,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을 땐 꽤 시간이 흘러있었다. 심지어 산타크로체 성당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부터 두오모 광장까지 하나씩 다시 훑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아쉽진 않았다. 언젠가 피렌체엔 또 올 테니까, 또 와야만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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