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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Oct 26. 2020

거미를 죽일까? 모기를 죽일까?

거미와 모기 중에 무엇을 죽일지 고민 중이다. 거미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지만 천장 구석에 손바닥 만한 집을 짓고 언젠간 자고 있는 나를 암살할 것 같은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모기는 평소에 존재감을 내보이지 않지만 불을 끄고 누우면 작은 이명 소리와 함께 얼굴에 안착해 피를 빨아먹어 간지럽힌다. 다행히도 이 둘은 이 좁은 방에서 함께 공존하지 않는다. 거미는 모기를 먹기 때문이고 그런 거미를 내가 잡으면 모기가 다시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둘 다 잡는 방법도 있겠지만 산 밑에 있는 나의 집은 언제나 이들의 세력권 안이라 조금만 소홀해지는 금방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한다. 특히 모기는 날이 추워지면서 바깥보다 따뜻한 집을 찾고 오래된 허술한 우리 집에 쉽게 침투하는 것 같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이들을 죽인다. 천장에 매달려 있으면 뛰어서 죽이고 모르고 걷다가 밟아 죽이고 책상에 기어 다니면 휴지로 싸서 죽이고 화장실에서 찾으면 강한 물줄기로 수장시켜 죽인다. 이 지긋한 싸움도 겨울이 오면 끝나겠지만, 나는 양쪽 진영을 상대하면서 힘을 소비하느니 한쪽 진영에 힘을 주고 제어해서 한쪽 세력을 없애버리려 한다. 예상했다시피 무조건 거미에게 세력을 줄 수밖에 없다. 거미는 모기를 잡아서 모기는 거미를 잡지 못하기에 거미에게 싱크대 밑에 자리와 현관 위쪽에 자리를 줬다. 내가 보지 못하는 바퀴나 다른 벌레도 거미는 잡기에 싱크대 밑자리를 줬는데 모기를 잡기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현관 위에 자리는 출입구를 봉쇄하고 추가적인 지원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의 적들만 차단하면 충분히 편안한 잠자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제의 적도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적이었던 친구는 너무 가까이 지내면 좋지 않다. 내가 수면을 취하는 방 온전히 청정한 지역으로 둬야 한다. 머리가 좋지 않은 녀석들이라 자신들의 세력이 커지다 보면 여기까지 넘볼 수 있겠지만, 즉각 처형을 실시한다. 이것은 본보기가 될 것이며 두려움에 떨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작은 소유에 만족하며 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왕거미가 나에게 대화를 요청해 왔다. 커다란 거미가 아닌 그들의 왕인 거미. 작은 공간에서 번식을 많이 해 식량 부족과 살아가는 장소가 작아 자신이 거느리는 거미들의 불만이 폭주한다는 내용이었다. 속으로는 그러게 왜 자꾸 싸지르냐고 생각했지만 작은 생물이라도 언제나 내 곁에 두면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듯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의 터전이 좁은 것은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할 듯 보였으나 식량 문제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타협의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이 거미의 왕은 싱크대 거미의 왕이다. 현관 거미의 왕은 따로 있다. 위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기가 찼다. 허용해 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들이 지금 와서 권리를 논한다니 어이가 없다. 일단 뭐 모기도 잡아주고 확실히 이들이 자리 잡고 나서 다른 벌레들이 코빼기도 안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을 이들에게 나눠주기로 했고 싱크대에서 냉장고 밑에 까지 범위를 넓혀줬다. 이들은 만족하는 듯 거대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현관의 거미들이 세력이 커져서 들어오는 벌레들을 처음부터 차단해 식량으로 쓰니 싱크대 거미들의 먹이가 줄어든 것이기도 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현관 거미들의 요구도 들어올 것 같으니 이 둘을 이간질해 한쪽만 살려둬야겠다.


전쟁은 현관 거미의 쉬운 승리로 끝났다. 살던 공간 확장으로 싱크대 거미가 수는 더 많았지만, 내가 식량을 주지 않고 외부에서 오는 식량이 차단되니 자연스럽게 내부에서 분열로 서로 잡아먹는 사태가 일어났고 몇몇 거미들은 현관 거미들에게 대항했지만 자신의 집을 두고 다른 거미의 집을 공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 다시 싱크대 밑과 냉장고 밑은 깔끔하게 바뀌었고 현관 거미들은 현관에서 더 이상 공간을 늘리거나 체수를 늘리지 않고 이미 갖고 있는 체계 안에서 더 밀도를 높여 갔다. 몇몇 작은 거미들은 다른 창문에 터를 잡았지만 워낙 현관 거미 무리의 규모가 강력하다 보니 신생 거미족들이라기보다는 현관 거미에서 파생된 무리들이 작은 마을을 갖고 사는 정도였다. 나도 한바탕 일을 치른 터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겨울이 가까워져 왔다. 현관 거미들은 겨울이 가까워 오자 다른 벌레들이 외부에서 완전히 사라져 더 이상 먹이를 구할 수 없었다. 처음에 마을 단위창문 거미들이 다시 현관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이들은 한 곳에 모여 방법을 구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겨울에 이들은 차가운 현관문에 붙어 얼어 죽을 것으로 예상했고 나는 그들을 청소하고 내년에는 이 집을 떠나면 됐다. 하지만 이들은 겹겹이 현관에 거미줄을 쳤고 두터운 벽을 만들었다. 모든 창문에도 거미줄을 쳐서 벽을 치고 이 집을 하나의 고치로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자고 일어난 하루 밤 사이에 일이었다. 집안 구석구석 있는 작은 부스러기를 모아 먹이를 찾아 한 곳에 모아 두고 그들은 겨울을 나을 준비를 했다. 나는 현관 거미의 왕에게 일어난 사태에 대해 항의를 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대화를 차단했다. 방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물리적으로는 분명히 내가 이길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오는 정신적인 타격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들 그들이 몰려 있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아서 움찔 된다. 하지만 언젠간 아니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높은 곳에서 눈을 감고 한 번에 뛰어내린다는 생각으로 문을 강하게 열고 싱크대에 물을 틀어 그들에게 뿌렸다. 그들은 혼비백산 흩어졌고 나는 그런 거미들을 하나하나 짓뭉갰다. 와중에 내 몸을 타고 올라온 거미도 있었으나 내가 몸을 강하게 흔들어 떨어져 나갔다. 더 많은 거미들을 몸을 타고 올라오자. 바닥을 뒹굴며 몸에 있는 거미들을 뭉개는 동시에 다른 거미들도 자연스럽게 바닥과 한 몸이 됐다. 현관 모서리 그들의 시초였던 왕거미만이 살아 있었다 그는 똥꼬에서 거미줄을 타고 내려와 여덟 개의 발로 죄를 빌었다. 나는 가차 없이 죽였으며 더 이상 그들이 필요하지 않고 작은 거미의 움직임이 나에게 동정을 살만큼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뽑아 그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봉투에 버리고 밀봉했다. 확실한 처리는 아무래도 변기통에 버리고 물을 내리는 것인데 이만한 양을 버리면 뭔가 찝찝했다. 청소가 끝났고 집은 모기도 거미도 없는 나만의 공간이 됐다. 다시 날이 따스해지기 전에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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