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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Oct 22. 2020

고통

박스를 접다 손가락이 베다. 오른손 약지 두 번째와 세 번째 마디 사이에 가로로 0.5cm가량 베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얇게 살갗이 벗겨져 안쪽 분홍색 살이 보였다. 덜렁거리는 살갗을 찢어 바닥에 버리고 상처를 봤다.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듯 고통이 커져 갔다. 물에 상처를 씻어내고 다시 박스를 접었다. 박스가 내 눈높이까지 쌓였다. 익숙할 때로 익숙해진 일은 다른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해 준다. 과거로 돌아가 그때 다른 판단을 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멍함 속에서 날카로운 고통으로 깨우는 상처. 나는 공기를 강하게 빨아 마시고 상처 난 손가락을 꽉 쥔다. 피가 흐른다. 이미 다친 상처에 깊게 베나 보다. 입으로 손가락을 빨고 지혈을 한다. 멈췄다. 자주 쓰는 오른손이 베기 때문에 왼손으로 박스를 접는다. 속도는 전보다 느려졌다. 안 쓰던 손을 사용하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던데 덕분에 머리가 좋아질 예정이다. 박스를 접는다. 오른손으로 하던 일을 왼손이 한다. 자꾸 버벅다. 어릴 때 거울을 보고 왼손을 들었을 때 거울에 오른손이 들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놀이공원에 갔을 때 거울방이라는 곳에 갔다. 그곳에서 좌우가 반대되는 아니 좌우가 정확하게 보이는 거울에서 나는 헤맸다.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갔다. 뇌는 이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고집을 부렸고 나는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정당한 것인데 익숙하지 않다고 신기했다. 다시 박스를 접는다. 왼손으로 받고 오른손으로 받친다. 왼손은 모서리를 펴고 눌러 테이프를 붙인다. 행동 하나마다 계산 없이 물 흘러가듯 지나간다. 만약 박스 접기 대회가 있다면 나는 상위권에 들어갈 것이다. 찌릿하게 고통이 찾아온다. 멀어지다가 다시 가까워진다. 마치 고무줄이 늘었다가 줄어들듯이 고통이란 그렇게 내 주위를 돌고 있다.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처럼 사계절이 지나간다. 약으로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이 고통 덕분에 왼손을 쓰게 됐고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도착했다. 돈을 주고 멀리 가지 않아도 작은 상처 하나는 꽤나 특별한 곳으로 나를 인도해줬다. 가끔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기다리게 될 때가 있다. 박스는 접을 만큼 접었고 땀이 많이 흘러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었다.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은 상처에 스며들어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오른손을 부자연스럽게 들고 씻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불편함 연속이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맡긴만큼 부재했을 때 그만큼의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은 살아야 하고 다른 대체품을 갖고 있다. 두 팔 없이 발로만 살아가는 사람을 봤다. 두 다리로 운전을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신체를 단련하여 살아가는 사람. 또 어떤 사람은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다. 상처를 가볍게 닦고 수건으로 꽉 누른 채 나와 약 바르고 밴드를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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