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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Nov 03. 2020

ab

나는 b라서 a에게 처형당한다. 모두가 원하고 그들은 열광하고 나무판자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들은 결국 b가 될 것이다. 올려보는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a일 수 없고 a가 권력을 들어 올린 순간 그들의 팔 힘은 점점 떨어져 결국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 것이다. 기다렸던 b는 쟁취할 것이다. 내 피가 양분이 됐기 때문이다. 창과 같은 몸으로 돌진해 관통하고 왕관을 머리에 쓰고 가장 높게 일어설 것이다. 내가 b인 이유는 b로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a들은 알지 못한다. 혹시 a 중 이 단순함을 알아채는 이가 있으면 a는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르겠다. 아는 문제가 아니다. 아는 것은 시작이다. 이해해야 한다. 핵 깊은 곳에 박혀있는 기둥 전체를 자신에게도 쑤셔 넣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한 명도 없고 나 또한 아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기대를 하기보다는 당장의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현명하다. 흙밭에 질질 끌린 발가락. 발톱이 부러져 나간다. 고통은 다른 고통으로 덮어져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은 오감을 갖고 있으면서 쓸데없이 미래를 알기도 원한다. 오감은 나침반이다. 오감은 전달되는 다양한 전체를 한 폭에 받아들인다. 내가 느끼는 뭐든 것은 내가 가는 방향이다. 가야 할 방향이 아닌 가고 있는 방향이다. 이미 그 선로에서 바퀴는 멈추지 않고 구르고 있다. 다리로 걷는 착각을 하니깐 유연성을 잊고 살아서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a를 보니 나는 a를 향해 가고 있다. a는 나를 보니 b가 되겠지. 권력의 이양이다. 죽지 않는 것은 오직 권력이다. 내가 죽는 이유는 누구를 죽여서도 아니고 살이 검어서도 아니고 마녀라서도 아니고 여자라서도 아니고 남자라서도 아니고 아이라서도 아니고 노인이라서도 아니고 예수라서도 아니고 그 어떤 받아들임으로써도 아니다. 그저 b라서 a의 권력을 갖지 못해서이다. 이 단순한 이유를 a는 모른다. 삐걱 대는 나무 계단을 맨발로 밟고 올라설 때마다. 바닥에 튀어나온 못들이 발바닥을 찌른다. 내가 느끼는 고통을 신경 써줄 만큼 이들은 아량이 넓지는 못한가 보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찐득하다. 눈앞을 흐리고 정신은 몽롱하다. 당신들은 분노하지만 언젠간 나를 잊을 것을 안다. 그때 다시 일깨워도 감정에 동요가 없을 것을 안다. 왜냐면 나는 죽은 b이기 때문이다. 죽은 a라면 역사 안에서 살아 있을 것이다. 죽은 b는 숫자로 기록된다. 적으로 기록된다. c와 d의 전쟁이 있었다. c는 d를 죽이고 d는 c를 죽였다.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재 의미가 없다. 현재 갖고 있는 의미는 밑의 계단이 되어야 한다. a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해라. 믿음을 요구를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a의 위치를 놓치지 말아라. b가 되는 자는 필연적으로 생긴다. 그들은 b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선택권이 없다.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다. 그들은 오감에 속아 a가 되려 한다. 하지만 자꾸 b로 날아오르고 모두가 그의 날개를 향해 돌을 던진다. 약한 b는 추락하여 거름이 되고 강력한 b가 살아남아 b의 세상을 이끌고 온다. a는 그때 b가 아닌 c와 d에 가까워진다. 춥다. 아픔보다 추위가 더욱 고통스럽다. 텁텁한 밧줄이 목에 매이고 바닥은 금방이라도 밑으로 꺼질 것 같이 흔들거린다. 옆에 있는 a는 가면을 써서 감정이 없어 보인다. 혹시 인간이 아니지 아닐까? 의외로 두렵지 않다. 결국은 슬플 것이라 생각했다. 슬프지 않다. 초연하지도 않다. 3년 전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때와 같은 기분이다.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기분이다. 배불리 먹고 와인을 한잔 마시는 기분이다. 저 a들은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그저 바라본다. 엄마가 죽기 전 약속한 게 있다. 만약 먼저 엄마가 죽으면 내가 죽을 때 나를 데리러 오라고. 엄마는 a였다. 하지만 나보다 빨리 죽었다. a도 별 수 없다. a인 엄마가 데리러 올지 모르겠다. b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 저들 사이에도 b가 숨어있다. 그들은 척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척을 한다.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고 배부른 식사와 와인 한잔을 걸치고 말에 몸을 싣어 초원을 달리다가 그들은 자신이 b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b는 비극이 아니다. 어둡지만 빛에 가깝다. 빛은 어둠에 가깝다. b는 c로 연결된다. 발전이 아닌 변화다. 언젠가 안정되는 날까지 그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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