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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Nov 08. 2020

사기

땀으로 바닥에 점이 찍힌다. 손바닥으로 밀어내고 다시 당기고 밀어내고 다시 당기고 이 전혀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은 나름의 이름도 있고 이런 행동을 통해 신체가 더 강한 힘과 지구력을 얻게 된다. 나는 매일 이 짓을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년간 해왔다. 누군가는 평생을 하지 않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일. 아침에 눈을 뜨면 우유와 오트밀, 바나나를 먹고 달린다.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달린다.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지만 뜨거운 몸으로 금방 덮여진다. 길 건너편 아침마다 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레깅스에 모자를 쓰고 바람막이 외투를 입는다. 긴 선은 귀로 이어져 있다. 그 사람도 나를 봤었겠지만 우리는 인사를 나누지는 않는다. 그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길로 달린다.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고 다른 발로 착지했을 때 전신에 충격이 온다. 허리가 떨린다. 최근에 다친 부위가 아려왔다. 곧장 방향을 틀어 집으로 향한다. 빠르게 뛰기보다는 천천히 무리가 오지 않는 한에서 그리고 숨이 차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른 외출로 날씨를 알았으니 출근을 위한 복장은 쉽게 정해진다. 샤워를 마치고 머릿속에 정해둔 옷을 입는다. 눈에 띄는 옷이 있지만 정해둔 옷을 입는 게 좋다. 내가 생각해본 나보다 남들이 보는 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제는 잠에 들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누워서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고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누르려고 단순한 결론을 냈다. 왜 나는 일을 하지? 왜 돈을 벌어야 하지? 왜 운동을 하지? 정말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건가? 그때 왜 화가 났지? 짜증 난다. 만일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답을 모른다고 살지 못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만 나열하고 생각을 접는다. 일단 자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더욱 뛰었어야 했다. 오늘 밤도 잠이 오지 않으면 내가 찾아가야 하는 고생을 해야 한다. 완전히 몸에 힘을 제거해서 강제적으로도 잠에 들게 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에 좋지 않을지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은 모든 걱정을 지워버린다. 회사에 도착하면 먼저 온 동료들이 넘겨준 서류를 확인한다. 뒤따라 들어오는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커피를 한잔 마신다. 한 모금 넘기고서 깨달았다. 아차. 남은 커피를 버리고 의자에 앉는다. 머리가 돌고 허리의 통증이 척추를 타고 전해진다.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이 내 것이라면 자해이다. 몸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타협을 통해 나의 의견을 따라주지 언제나 배신을 하고 있다. 신호는 좋다고 하나. 모든 판단은 내가 하고 싶다. 필요 없는 신호와 퇴화돼야 하는 신호들이 뇌를 찌른다. 퇴근까지 아직 일곱 시간이 남았다. 무엇이 남기기 위해 일을 할까? 조퇴를 했다. 점심 이전 두통이 심해져서 조퇴를 했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기 겁이 나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외투를 방바닥에 집어던지고 누웠더니 천장이 돌았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저 잠에 들고 싶다. 침대 옆에 둔 생수통을 들고 물을 마셨다. 입 안에 신선한 느낌이 들어 조금 나아졌다.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 과거를 다시 생각해보고 복기하는 생각들 밀어내고 덜어내고 털어내고 던져도 놓아지지 않았다. 마치 그 일을 해결해야만 마지막 결말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밖으로 나왔다. 항상 달리던 그 길을 달린다. 정장 바지와 구두가 불편하다. 셔츠는 가슴과 등을 조인다. 길 건너편의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낙엽이 떨어진다. 발에 차이고 도로로 뛰어든다. 차는 그 낙엽을 밟고 지나가지만 낙엽은 무사하다. 결국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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