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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Nov 25. 2020

없는 게 있어

두꺼운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끼운다. 먼저 온 직원들이 목례를 하고 나도 가볍게 받아준다. 프린터기 위에 쌓인 전표를 들고 뒷장으로 넘기며 우선적으로 보내야 할 물건들을 골라낸다. 회사에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사무실 내부까지는 청소를 해주지 않아 말단 직원들이 도맡아서 한다. 나는 청소를 먼저 끝낸 직원을 불러 전표를 넘겨주고 급한 거래하는 업체의 물건을 챙긴다. 보통 점심을 먹고 두시 이전까지는 물건을 보내줘야 해서 오전 동안에는 이 거래처에 중점을 두고 일을 한다. 진원들이 각자 전표와 물건을 챙겨 들고 배송에 나가면 커피를 한잔 뽑아 찬물과 얼음을 가득 고 한 번에 마셔버린다. 잠을 깨기 위해 마신다. 오전은 오후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두조로 나눠서 식사를 하러 간다. 나는 항상 뒷조에서 식사를 한다. 먼저 나간 조가 다녀오면 부사수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식사를 한다. 다녀와서 인수인계를 받는다. 오후에는 들어오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또 물건을 받고 정리하고를 반복한다. 누군가에게 맡기기에는 창고를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직접 한다. 직원들이 와서 물건 위치에 대해 물어보면 답을 한다. 오래 일한 직원도 다루는 물건의 가짓수가 많기 때문에 모르는 때가 간혹 있다. 마지막 택배사 직원들이 와서 포장해 놓은 물건들을 다 가져가면 재고를 세고 그 사이에 나간 물건이 있는지 확인 한 다음 실제 물건의 개수와 전산상의 개수 차이가 없다면 정리하고 퇴근한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출근길에는 빠르게 내려와서 좋지만 퇴근길에는 거꾸로 그 길을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이다. 운동이라 생각하고 기어를 최대로 올린 뒤 쉬지 않고 빠르게 페달을 밟아 올라간다. 회사를 다니던 초기에는 한 번에 쉬지 않고 올라가는 것에 번번이 실패했는데 지금은 다 올라가고도 힘이 남아 변주를 줄 때도 있다. 일부러 천천히 올라간다지 기록적으로 얼마큼 빠르게 올라왔는지 확인한다지. 몸이 뜨겁게 달궈져 있다. 외투를 벗고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호흡을 고른다. 앱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집 앞에 쌓여있다. 집에 물건이 가득 차있는 것이 좋아 항상 대량으로 많이 주문한다. 냉장고도 가득하게 차있어야 한다. 냉동실에는 냉동식품들이 있는데 저녁을 차리기 귀찮은 날에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눈에 밟히는 머리카락들이 있어서 청소기를 돌린다. 심심해서 음악을 튼다. 여러 곡을 듣기보다 한곡을 반복해서 듣는 것을 좋아한다. 가사가 익으면 따라 부른다. 음악과 같이 부르면 나도 그 정도 부르는 것 같다. 노래방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은 없다. 청소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아 뉴스를 본다. 마우스로 스크롤을 내리다가 끌리는 제목을 클릭한다. 배가 고프다. 아침에 해둔 밥이 있어서 카레를 그 위에 붓고 김치를 꺼낸다. 그냥 먹기 심심해서 계란 프라이를 하나 해서 올린다. 구독해둔 영상을 누른다. 카레가 묻은 빈그릇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아 영상을 본다. 다 보고 난 뒤에 찌뿌둥한 허리를 일으켜 세우고 그릇을 든다.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침대에 눕는다. 통화를 한다. 주말에 약속이 있는데 오랜만에 친구를 볼 생각에 들뜬 것 같다. 이십 분이 지났고 바닥에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한다. 나이가 들 수록 몸이 굳어서 걱정이다. 곧게 몸을 뻗는다. 좌우로 길게 늘어트리고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인다. 세탁기가 다 됐다. 빨래를 널고 창문을 살짝 열어 둔다. 졸리기 시작한다. 어젯밤도 늦게까지 핸드폰을 하다 잠에 들어서 피곤한 듯싶다. 이불을 발끝까지 덮고 고개만 내밀어 천장을 보다가 옆으로 눕는다. 팔을 베개 안으로 밀어 넣고 떠오르는 생각을 한다.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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