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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Nov 28. 2020

공중전화

진동이 울린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니 예상치 못한 숫자 조합이 찍혀있다. 전화를 받는다. 동창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한 이유는 안부를 묻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대답했다. 똑같지 뭐. 동창도 그렇다고 했다. 언제 한번 보자고 했다. 동창은 좋다고 했다. 오늘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해서 부담스러워 주말에 보자고 했다. 동창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러자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전화기가 아닌 이유는 나와 전화기 사이 구분이 되는 경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선으로 나뉘어 있다. 점 또한 점일 수 없다. 아주 짧은 선이다. 그렇기에 점이 세상에 점이라 불리며 구분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인생은 세 번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나는 그 생각과 다른다. 기회는 항상 있다. 요즘 같은 시대는 더욱이. 사회 계급을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수많은 인구와 밀집해서 산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 기회와 힘을 얻는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산다. 다시 동창에게서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받지 않더니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혹시 00 번호 아닌가요? 이거 공중전화인데요? 주말에 보기로 했는데 다시 전화가 오겠지. 아 네 혹시 어디에 있는 공중전화기인가요? 옥수동이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진 않았다. 모험은 과감하고 어리석으며 자극뿐 득이 없다. 견고하게 하루하루 쌓아가는 통장의 잔고만이 풍족한 삶을 영위하게 해 준다. 내 기억에는 자주 깡통차기를 했었다. 동창은 머리가 좋아서 기발한 방식으로 숨어있었고 내가 술래일 때는 언제나 나를 골탕 먹였다. 운동 신경도 좋아 얼마나 재빠른지 동시에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영락없이 술래만 하다가 집에 돌아가고는 했다. 불만이지는 않았다. 별생각 없이 해서 더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주말이 됐다. 전과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고 동창과 만날 곳을 정했다. 술집으로 갔다. 결혼했는지 물어봤다. 했다고 했다. 나는 안 했다고 했다. 술잔이 몇 번 비워졌다. 동창은 핸드폰을 꺼내 아내와 통화를 한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동창이 앉은자리를 멍하게 쳐다봤다. 호프집 유리벽 밖으로 동창은 팔짱을 끼고 한쪽 손으로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통화를 하면서 발을 구른다.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고는 입김과 함께 연기를 내뿜는다. 눈이 내린다. 도로 가장자리에 쌓인 눈과 밟혀 검게 변한 눈은 같은 눈이다. 혼자 잔에 술을 따른다. 맥주를 더 시키고 둘를 섞는다. 몸에도 섞는다. 동창이 담배 피우는 모습에 나도 피고 싶어서 밖으로 나간다. 동창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담배를 보여주고 반대편 위치에 서서 담배를 피운다. 동창의 통화소리가 들리지만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없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연기를 흡입하니 술기운이 올라온다. 곳곳에 트리가 보인다. 반짝이는 작은 전구 그냥 기분이 좋다. 올해도 지나간다. 똑같아 보이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단지 레일 위를 탈선하지는 못했다. 동창이 전화가 다 끝났는지 내쪽으로 왔다. 담배 한 가치를 더 꺼내며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웠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주인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봤고 우리는 움츠려 앉아 남은 술을 마셨다. 


그 후로 동창을 만난 적은 없다. 언젠가 또 볼 수 있으면 보는 게. 가끔 그 번호로 전화를 건다.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실 그 동창이 실제 내 동창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앉아서 그때의 이야기보다 지금의 이야기를 했다. 비슷한 이야기. 몇 년이 또 지나고 또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면 나는 지금의 이야기 보다 그때의 이갸기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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