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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Nov 21. 2020

탈춤

야 이 새끼야 인간이 뭐가 대단한 것 같지? 개새끼도 지 자식들은 이뻐해 그게 무슨 대단한 것 마냥 포장질이야 시발놈들이 인간이 하는 짓거리들 동물들도 똑같이 한단 말이야 동물이 하는 짓거리 인간도 하고. 아무거나 갖고 와봐 아무거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다고! 스승님이 술에 취하시면 맨날 하시는 소리다. 지겹게 들어와서 귀에 딱지가 앉았다. 떼어내어 바닥에 버린다. 항상 강요하신다. 더욱 본능에 충실해라 무아지경에 빠져라. 쓸데없는 지식은 괜히 힘 만들어 간다면서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맨날 춤만 췄다. 바닥에 땀이 고여서 발바닥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스승님은 아주 크게 웃었다. 그게 바로 춤이야. 나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갈빗대가 받은 충격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스승님을 북을 두들겼고 나에게 계속 춤을 추라고 했다. 통증으로 팔을 곧게 뻗기 힘들었다. 자꾸 움츠려 드는 폼을 스승님은 즐거워했다. 매일 술을 입에 달고 사신다. 독주보다는 막걸리와 같이 도수가 낮은 술을 많이 드시는데 진득하게 취해서 좋다고 하신다. 자신이 학교를 나온 것을 항상 후회하신다. 꽤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시고 이미 돌아가셨지만 스승님의 스승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셨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것들은 하나 쓸모없다고 하셨다. 그 과정들은 아닌 것들을 아니라고 알았을 뿐이지 진정 맞는 것은 하나도 배운 적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아닌 것은 널리고 널렸어. 그게 맞다고 달려다가 코 깨져 봐야 아니다 싶어서 돌아오지 근데 너무 멀리 갔어. 그런 자신의 경험과 후회 때문인지 나에게는 투철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맞는 것에 대해 주입하신다. 매일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 숙달 그 밀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란 말이야. 이상한 잔재주만 배우려 하지 말고 기본만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추란 말이야. 많은 곳에서 지원을 받고 계신 스승님 덕분에 돈에 대한 걱정 없이 춤을 출 수 있다. 스승님 또한 나를 키우고자 모든 시간을 할애하신다. 가끔 외출을 하시는데 술을 사러 가시거나 공연이 있으실 때 외출을 하신다. 사람을 잘 만나시지 않는다. 다 허접해. 양복 입은 놈이나 드레스 입은 년이나 막일판 새끼들 머리 빡빡 민 중놈들 한 껍질만 벗기면 거기서 거기야 자기들 환상에 취해 사는 거지. 그걸 또 대단한 거라고 가서 돈 주고 시간 낭비하는 인간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런 말씀을 하시길래 그럼 우리도 다를 바 없지 않냐고 물었다. 맞다 이놈아. 역시 너는 난 놈이야. 이러신다. 나도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슬며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스승님은 화를 벌컥 내셨다. 네가 말할 줄 알고 쓸 줄 알면 그걸로 됐지 뭘 더 배우겠다는 거야! 춤출 놈은 춤만 추면 돼! 꼬리를 내리고 그날도 춤을 췄다. 바닥에 땀이 고여서 발바닥이 미끄러웠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스승님이 북채를 던졌다. 생각했지! 그랬다고 했다. 그저 주어진 행위에만 충실해지려고 한다. 이제 나이도 많이 드셔서 사실 스승님이 던지는 북채에 맞아도 그리 아프지 않다. 그냥 안쓰러워서. 스승님과 산책을 나갔다. 너 학교 다니고 싶다고 했지? 나는 놀라 스승님을 봤다. 학교에서 뭘 배우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책을 읽지 않나요? 뭘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가고 싶다고 한 거냐고 한소리가 날아왔다. 나는 움츠려 들었다. 스승님은 학교에 가면 인간이 만든 것 인간에 대한 것을 배운다고 했다. 나는 그렇구나 싶었다. 스승님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 끝에 시선을 두고 이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네 개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떨어진 낙엽을 가리켰다. 나는 또 그곳을 보고 스승님은 개미를 가리켰다. 산 정상에 올라가 춤을 췄다. 울퉁 불퉁한 바닥을 발가락으로 눌러 가면서 춤을 췄다. 자칫하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어릴 때는 겁이 났지만 지금은 익숙해서 무섭지 않다. 오늘 스승님이 가르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스승님은 술에 잔뜩 취하시면 춤을 춘다. 공연이 아닐 때면 춤에 때가 탄다고 잘 추시지 않는데 만취 상태에서는 간혹 추신다.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는 절때 추지 않는다. 내가 있거나 혼자 있으실 때. 나는 스승님의 춤을 본다. 구부정했던 허리도 춤을 추실 때는 곧게 펴지고 어깨도 딱 벌어진다. 저 마른 몸에서 어떻게 저런 풍채가 나오는지 궁금하다. 춤을 출 때면 힘이 좋으셔서 공기가 흔들리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압도돼서 입을 벌리고 구경한다. 언젠간 나도 저 경지에 오르리라. 땀이 바닥에 고인다. 밟지 않았다. 나는 춤을 멈추지 않았다. 스승님이 죽어도 멈추지 않는다. 춤은 나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인간들 사이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 스승님이 돌아가시면서 자연스럽게 제자인 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물론 실력으로 증명해 냈고 나 말고 다른 제자를 키우시지 않았기 때문에 수월했던 게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기존에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것들 매일 한다. 같이 지내면서 했던 패턴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어간다. 조금도 내 때가 묻어서는 안 된다. 내 제자에게도 이어지는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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