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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Nov 18. 2020

엄마

가끔 엄마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반쯤 등받이에 기대어 서로를 마주 보고 겪은 일을 주제로 서로 생각을 꺼낸다. 항상 같은 관점은 아니지만 말로 상처를 주는 게 싫어서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나이라는 게 방패로 좋은 쓰임이 있다. 세대가 달라서 그래 라는 말로 넘어간다. 주말 오후였다. 나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는 나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이 겪은 일을 말했다. 밤 사이에 잠을 설쳤는데 죽은 할머니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원래 허약한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자기를 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기도를 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봤다. 오랜만에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했다. 한동안 귀찮다며 안 갔던 교회이다. 나는 같이 갈까?라고 물어봤다. 엄마는 그럼 좋지라고 대답했고 나는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그대로이다. 바뀐 게 없는 풍경. 똑같은 할머니들 똑같은 성가대 똑같은 목사 똑같은 내용의 성경. 지루한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을 둘러본다. 젊은 사람들의 무리도 몇 명 보인다. 그들과 친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앞 의자 뒤에 튀어나온 책상머리에 머리를 처박고 중얼거리며 기도한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 나는 혼자 안 하기 머쓱해서 눈을 감는다. 이왕 감은 김에 기도를 한다. 모두를 구하소서. 예배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봤다. 집에 돌아오니 늦은 오후가 됐다. 주말을 가볍게 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나도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곤 과거에 할머니와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들었다. 둘은 이야기가 떨어지자 티브이를 틀고 가만히 있었다.


다음날 비명 소리에 깼다. 엄마는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급하게 뛰어가 엄마를 집안으로 끌어당겼다. 나와 엄마는 베란다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 왜 그랬는지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불렀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정신과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경비실에서 사람이 왔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난처한 모습이었다. 엄마에게 할머니라면 엄마를 그쪽으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할머니라면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퉜다. 당장이라도 엄마와 떨어져 있고 싶었지만 엄마라서 옆에 있었다. 새벽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실로 뛰쳐나갔다. 엄마의 뒷모습이 문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뒤를 쫓았다. 엄마는 교회로 향하는 듯 보였다. 택시를 잡고 엄마를 불러 세웠다. 엄마는 놀라지 않았다. 나와 같이 택시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엄마는 아무도 없는 교회 내부에서 혼자 일어나 기도를 했다. 어떤 의미의 기도일까? 하품이 나왔다. 눈을 깜빡이다가 잠들었다. 엄마는 사라졌다. 나는 경찰을 불렀다. 일단 집으로 향했고 집에도 엄마는 없었다. 어디로 갔을지 고민을 했다. 옥상으로 향했다. 그곳에도 없었다.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지하로 향했다. 엄마가 있었다. 어두운 공간에 서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도 나를 불렀다. 나는 가까이 갔다. 엄마 옆에 서니 엄마는 내 팔을 강하게 붙잡고 할머니 라며 소개해줬다. 나는 장단을 맞추려고 인사를 했다. 엄마는 내 칭찬을 했다. 나는 웃었다. 엄마가 크게 웃면 나도 크게 웃고 엄마가 작게 웃으면 나도 작게 웃었다. 우리는 할머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경찰에 전화를 했다. 정신병원에 전화를 해 상담을 했다. 그쪽의 치료의 목적으로 하는 권유가 내키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열심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할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엄마는 기도만 했다. 나도 따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종종 지하실에 내려가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베란다가 아닌 게 어딘가 싶었다. 엄마는 전보다 활기차게 살았다. 많은 시간을 지하실과 교회에서 할애하기는 했지만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보기 좋았다.


아빠가 출장을 다녀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아빠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설득하려 했지만 아빠는 화가 나서 집에 있던 물건을 던졌다. 나는 왜 우리의 평화를 부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사람들을 동원해 엄마를 가두려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매달렸고 엄마는 기도했다. 갇힌 엄마는 초췌 해졌다. 나는 우울해졌다. 아빠는 괜찮아졌다가도 화를 냈다. 우리의 기도로는 아빠를 막지 못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는 잘 있다고 했고 엄마가 편지를 쓴다면 할머니에게 전달해 준다고 했다. 엄마는 기분이 좀 나아져 보였다. 편지를 들고 지하실에 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 편지를 두고 나왔다. 편지가 바닥에 쌓였다. 먼지가 그위에 쌓였고 다시 그 위에 편지가 쌓였다. 나는 엄마에게 그곳에서 나오고 싶다면 연기를 하라고 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아빠를 설득했고 엄마는 얼마 안가 그곳에게 나오게 됐다. 아빠는 한동안 의심했지만 전과 같은 엄마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싶었다. 우리 셋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다시 출장을 간사이 엄마는 지하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안된다고 했다. 아직은 위험했다. 그래도 엄마는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고집을 이기지 못해 같이 지하실로 내려갔다. 바닥에 쌓인 편지와 먼지를 보고 엄마는 화를 냈다.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한 화인 것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가 없기 때문에 줄 수 없었다. 엄마는 내 목을 졸랐다. 그러던 참에 계단으로 아빠가 뛰어내려왔고 엄마의 얼굴을 잡고 밀었다. 엄마는 나가떨어졌고 아빠는 엄마를 끈으로 묶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 관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빠는 나를 보면서 소리쳤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 아빠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데 지하실이라 그런지 잘 연걸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높이 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사이 엄마는 아빠를 밀쳤다. 아빠는 핸드폰과 같이 날아가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엄마는 몸을 움직끈을 헐겁게 한 뒤 편지를 쥐고 달아났다. 달아나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엄마를 쳐다봤다. 아빠는 다시 소리쳤지만 나는 다리가 풀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아빠와 살고 엄마는 사라졌다. 아빠는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저 엄마의 장단을 맞췄을 뿐이다. 아빠는 다시 출장을 갔다. 일의 특성상 집을 자주 비웠다. 나는 혼자인 집에서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봤다. 언젠간 엄마가 돌아올지 모르니 아빠가 집에 없는 사이에는 전에 쓰던 비밀번호를 유지했다. 지하실은 폐쇄됐고 경비 아저씨들이 키를 갖고 있어서 일이 없을 때는 사슬로 잠겨있다고 한다. 그 뒤로 엄마는 할머니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지하실에 작은 창문이 있으니 그곳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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