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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Mar 06. 2021

가시

우산을 쓰고 바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검은 승용차가 놀랄 정도로 바짝 내 옆에 섰다. 이미 젖어 버린 신발과 바지 밑단이지만 승용차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불쾌해 인상을 찡그렸다. 승용차 내부를 봤다. 차 유리는 검은 거울 같아 주름진 내 얼굴만 반사되어 보였을 뿐 안을 볼 수는 없었다. 거기서 단절됐다. 다시 낮은 오르막을 힘차게 걸어 올라갔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찰박한 물 위를 뛰어 오는 발걸음 소리가 나를 뒤돌아 보게 만들었다. 그는 검은 정장을 입고 나와 같이 얼굴에 주름이 깊게 배어있었다. 다른 점은 두툼한 가슴과 곧은 등이 그를 한층 젊게 보이게 했다.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내 손목을 움켜 잡았다.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도련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은 상반되는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을 볼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미친놈. 그는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듯한 표정으로 입을 구겼다. 나는 상체를 뒤로 젖혀 그가 잡은 내 손목을 빼냈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좀 더 빠르게 고개를 숙여 올라갔다. 그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더니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서 보니 차가 나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차 창이 열렸다. 도련님 얼른 타세요. 비 맞습니다. 자택까지 태워 드리겠습니다. 마침 무릎이 시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어차피 미친놈이면 장단 맞춰주고 집까지 편하게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차에 탔다. 젖은 옷이 민망할 정도로 깔끔한 차 안이었다. 운전자석에 앉은 미친놈은 입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미친놈이 입을 뗐다. 이렇게 뵙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자택은 일단 가시던 길 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방향을 틀어야 하면 말씀해 주세요. 맞다 이 길로 쭉 올라가면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내가 사는 집이다. 좁은 골목길을 잘도 운전한다. 초행일 텐데 아마도 오랜 기간 동안 운전을 했겠지. 나 정도 나이가 되면 무언가에는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되어있다. 나이만큼 대우는 못 받아도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게 경험의 힘이다. 집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렸고 순순히 나를 보내주는 듯싶었다. 차 창이 내려갔다. 도련님 내일 아침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나는 흘려듣고 집 문을 강하게 닫았다. 문 밖에서 차 시동소리가 들리고 멀리 사라졌다. 이상한 놈이다. 시간이 남아돌아할 짓이 없나 싶었다.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손톱 밑에 나무 가시가 박혔다. 바닥을 손바닥으로 짚을 때 통증이 나서 보니 검은 심지 하나가 손톱 밑에 길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집 안에 마감처리가 안된 나무들이 꽤 있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집 상태가 오늘내일하는데 급하게 각목을 얻어와서 천장과 벽을 지지해놨다. 잠든 사이에 천장에 깔려 죽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돼도 나쁘지 않은 죽음이다. 가시를 빼기 위해 바늘을 찾는 중에 밖에서 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과일 장수가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장사를 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끄러우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과일 장수는 오래 있지 않고 한 시간만 잠시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는 심술이나 바닥에 침을 뱉고 집으로 들어왔다. 사실 방금 엔진 소리에 나가 봤을 때 그 미친놈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확성기를 통해서 과일 장수가 본격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끄러운 소리에 5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과일 장수는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공격적으로 차 문을 두드렸다. 바로 반응하지 않아서 한번 더 두들겼다. 과일 장수는 화가 났는지 인상을 찡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아까 온순한 모습과 다르게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당황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시발 거지 같은 집에 살면서 많이 생색내네. 과일 장수는 바닥에 침을 뱉고 차를 몰고 사라졌다. 나는 사라지는 차 꽁무니에 욕을 지껄였지만 속이 풀리지 않았다. 불끈 손을 쥐어서인지 손톱 밑에 가시가 따끔거렸다. 뒤에서 차가 경적을 울렸다. 재빠르게 뒤돌아 봤다. 하얀 승용차였다. 길 한복판에 서있으니 비키라는 신호였다. 시발.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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