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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Apr 04. 2021

무제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상대는 병상에 누워있을 때 그를 간호했던 간호사인 것 같다. 꾀죄죄하고 냄새나는 그를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나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이면서. 아직 남편에게 둘의 관계를 아는 것을 티 내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갇혀있으면서 일탈하고 싶은 생각이 생길 수 있다. 잠깐이다. 곧 원래대로 돌아올 테고 내가 지금 참는 게 현명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만약 여기서 내가 아는 티를 낸다면 우리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만 같다. 남편이 아팠을 때 찾았던 점집에 갔다. 무당은 나를 보자마자 혀를 찼다. 욕심이 과하다. 네가 남편이 아팠을 때 남편이 났길 바랬잖아, 그래서 지금 건강하게 잘 돌아다니는데 뭐가 문제냐. 호통을 쳤다. 복채를 상 위에 던지고 나왔다. 썩을 년. 다른 점집에 가서 남편과 그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둘이 언제 헤어지게 되는지 물어봤다. 못해도 이번 겨울까지는 가겠는데. 그 년과 남편이 같이 있는 상상을 하며 참는 시간으론 너무 길다.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다. 나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장 봐온 꾸러미를 펼쳤다. 남편은 일어나 내 옆으로 왔고 같이 장본 재료들을 냉장고에 정리했다. 야위었던 팔이 어느새 아프기 전보다 굵어진 듯해 보였다. 한번 아파본 탓인지 건강을 걱정 해 안 하던 운동을 시작했다. 익숙한 집 풍경 남편의 숨, 냄새 이 가득 찬 안정에 구멍이 뚫려 그 여자에게 새나아간다는 사실이 나를 고독하게 했다. 남편이 다시 직장에 출근을 한다. 적막했던 아침이 출근 준비로 분주하다. 남편을 보내고 그를 미행했다. 회사까지는 문제없이 출근했으나 점심시간에 따로 회사 밖에 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밥 먹었어? 응 지금 먹고 있어. 뭐 먹어? 그냥 국밥. 맛있게 먹어. 오늘 집에 돌아온다면 옷 냄새를 맡아볼 생각이다. 스스로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집에 돌아왔다. 베란다에 물을 떠 놓고 기도했다. 점집에서 받은 부적을 태우고 양손에 깍지를 꼈다. 그 사이 있는 무언가를 터트려 버릴 듯이 꽉 쥐었다. 손등에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이럴 때일수록 더 철저히 나와 집을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소를 하고 남편이 돌아올 쯤에 같이 자주 먹던 음식들로 식탁을 차렸다. 남편이 오면 옷을 받아 냄새를 살짝 맡고 걸어둘 생각이다. 남편은 예상보다 한 시간 늦게 집에 돌아왔다. 늦었네? 부장님이 밥 먹고 가라고 해서. 먼저 먹지. 말을 안 해줘서. 미안해. 남편은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왜 그랬을까. 옷에는 고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다행히 식사만 준비한 게 아니다. 침실에 향수를 뿌리고 남편이 누워있는 옆에 가운을 입고 들어갔다. 뒤에서 남편을 안자 남편은 움찔했다. 아무래도 이불속 따뜻했던 체온과 차가운 체온이 서로 만나 이뤄진 느낌으로 그랬을 것이다. 남편은 몸은 그대로 둔 채 뒤돌아 나를 봤다. 나는 남편에게 키스를 했고 팬티 속으로 손을 넣고 성기를 애무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는데 발기를 하지 않아 섹스하지 못했다. 남편은 아직 기력을 다 찾지 못해서 그렇다고 미안하다 했다. 나는 최대한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대신 남편은 자신이 입으로 해준다고 하며 내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남편에 머리카락을 쥐고 미끄러운 혀를 느꼈다. 동시에 침대 옆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가위가 보였다. 목 뒤를 한 번에 관통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남편에 손이 내 엉덩이를 강하게 쥐었다.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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