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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Apr 05. 2021

귀가

전에 집은 크고 높았지만 그곳 만큼 끔찍한 곳은 없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내가 살 곳을 만들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에 맞춰진 집에 살아야 했다 

도로변 골목에 들어가 몇 차례 폐가를 지나 더 좁은 골목으로 구겨 들어가면 땅 밑에 내가 사는 집이 있다 

곰팡이 냄새 좁은 방 한 구석에 차지한 빨래들은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역에서 내리면 담배냄새와 함께 커다란 건물들이 나를 내려보며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인 척 착각하게 만든다

어쨌든 내가 쉴 곳이 아니니 익숙한 골목을 찾아 걸어 들어가다 나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버려지지는 않은 아이였다 

태어났을 때는 나를 비춰주고 축복해주던 자들이 있었다 

곧 어두운 골목 좁은 하늘을 바라보며 닿지 못했던 우울에 빠진 아이처럼 끝을 모를 비극 속에서 때를 기다리니 작지만 내가 편히 쉴 곳이 있었다 

매번 집에 돌아오는 길 불안함 속에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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