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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Apr 18. 2021

이름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올린다. 지문 인식기에 달린 작은 화면에 양희승이라는 이름이 뜬다. 나는 양희수인데, 자동문이 열리고 곧장 보이는 사무실로 갔다. 안녕하세요. 저 어제 등록한 회원인데요. 제 이름이 잘못 등록되어있어서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양희수요. 잠시만요. 그런 분 없는데. 아마 양희승이라고 등록되어있을 거예요. 저기 지문 인식기에도 그렇게 뜨더라고요. 예 잠시만요. 양희수 님으로 다시 등록해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운동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지문인식을 다시 했다. 양희승이라고 이름이 떴다. 무하마드 알리는 자기 암시를 할 때 재밌는 말을 했다. 나는 약을 병들게 했다. 번개에 수갑을 채우고 교도소에 넣었다. 바위를 죽이고 돌을 부상 입혔다. 힘이 넘치는 표현들이다. 어떻게 스스로를 저렇게 과장해서 말하고 스스로에게 주입할 수 있을까. 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헬스장에 도착했다. 양희승. 몸무게를 재니 70킬로그램이다. 키에 비해 그렇게 마른 게 아니지만 이곳에 오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원판을 바벨에 꼽고 들어 올린다. 위아래로 들어 올리는 단순한 이 행위가 내 몸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누군가에게 호감이 되는 몸이 만들어지는 게 가끔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세상이란 단순하고 연관 없는 것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닐까. 나비효과라고 말하는 것 또한 연관성을 찾으려 하는데 그런 이어짐이 아닌 연쇄 폭발 같은 충격에 이어짐이 아닐까. 사무실로 찾아갔다. 저 아직 양희승이라고 등록이 돼 있는데요? 네? 양희승 님 아니신가요? 다른 분에게 말씀드렸었는데 양희수예요. 아 정말요? 입회할 때 쓴 계약서를 찾는다. 여기 양희승이라고 적으셨는데요? 계약서를 봤다. 글씨를 잘못써서 수 밑에 지운 표시가 승이라고 보였나 보다. 제가 잘못 적었나 봐요. 수로 다시 등록할게요. 수. 사무실에 있던 트레이너는 '이 새끼 뭐야'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민망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화가 났다. 모를 수 있는 건데 그런 표정을 지을 건 또 뭐야. 다음날 헬스장에 갔다. 옷을 갈아입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이 한없이 근육이 부족해 보였다. 어제 그 트레이너는 다른 회원에게 운동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대단하게 지껄이는 것을 보니 역겨웠다. 원판을 평소보다 무리하게 꼽고 바닥에 내리치며 데드리프트를 했다. 소리가 과했는지 트레이너가 와서 다른 회원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했다. 나는 각자 알아서 운동하는데 누가 피해를 보냐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트레이너는 나를 잡아끌어 사무실로 데리고 갔고 나는 힘에 밀려 끌려가는 자신에게 자존심이 상했다. 주먹으로 트레이너의 광대를 때렸다. 잠시 움찔하더니 반사적으로 주먹이 날아왔고 우리는 몇 번 주먹을 주고받다가 사람들의 만류로 떨어져 앉아 경찰을 기다렸다. 오른쪽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병원에 가니 실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점차 왼쪽 눈과 시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두 눈을 뜨면 오히려 보기 불편해 오른쪽 눈은 안대를 쓰고 다녔다. 다시 그 헬스장을 다니지 못해 다른 곳에 회원 등록을 했다. 이번에는 또박또박 양희수라고 이름을 적고 등록을 받는 트레이너에게도 양희수라고 재차 확인시켰다. 다음날 헬스장에 갔다. 지문을 찍고 뜨는 이름을 봤다. 작게 적혀있어 잘 보이지 않아 가까이 가서 봤다. 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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