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수 Apr 27. 2021

이사

책상을 들어 올렸다. 책상 밑 벽에 붙어있던 거미줄이 뜯어져 올라왔다. 이사를 가는 집인데 이상하게 사람이 살던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뒤에  팔짱 끼고 있는 여자가 짐을 옮겨 달라는 사람인데 50대로 보이는 여자 취향의 가구들은 아니었다. 저렴해 보이고 심플한 디자인, 20대 남자 혹은 여자 취향의 가구였다. 자식 이사를 대신해주는 부모가 있을 수도 있으니,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집안에서 나는 악취였다. 박스에 모든 짐을 넣고 트럭에 실었다. 목적지를 알려줬다. 내비게이션에 찍으니 서울 외곽에 있는 산 중턱이었다.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백미러로 멀어지는 여자를 봤다. 도착한 곳은 무너져 가는 단독 주택이었다. 의뢰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곳이 맞고 마당에 두고 가라고 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재차 확인을 했다. 신경질적인 대답이 돌아와 전화를 끊고 상한 기분을 추슬렀다. 마당에 물건을 내렸다. 대충 마당 한가운데 두면 알아서 하겠거니 해서 크기별로 모아두었다. 몸에 밴 냄새가 올라와 씻어내고 싶었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집에서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나왔다. 이런 집에 살기에는 깔끔한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사시나 봐요? 대답이 없다. 짐 여기다 내리면 될까요? 아이는 얼른 뛰어 와서 짐을 같이 내리려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내리는 위치만 알려달라 했다. 아이는 말없이 웃으며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곳에 물건을 뒀다. 아이는 내가 내려놓기 무섭게 짐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짐이 많지 않아 20분 만에 모든 짐을 내렸다. 아이는 캔 음료를 하나 꺼내왔고 나는 다 마시고 차에 탔다. 산에서 내려오는 도중 바퀴가 바닥에 박힌 돌에 걸려 덜컹거리다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굴렀다. 눈을 떠보니 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 나는 누운 상태로 집 천장을 보고 있었다. 아까 그 집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는 웃으며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줬다. 나는 몸에 이상이 없는지 몸을 움직여 봤다. 부서질 것 같이 아팠지만 다행히 움직여이지 않는 부분은 없었다.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없는 것을 보니 밤인 듯싶었다. 안도감이 들었던 이유는 몸이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는 것보다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것이다. 한 달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보험도 들어 놓은 게 없다. 타박상 정도면 집에서 쉬면 치료될 테니 말이다. 아이는 서랍에서 약통을 꺼냈다. 마구 쑤셔 넣은 약봉지들이 보였다. 그 뭉텅이에 손을 집어넣고 진통제를 꺼냈다. 나에게 물과 함께 주며 먹는 시늉을 했다. 나는 받아 들고 입에 털어 넣었다. 얼마 안 가 통증이 가라앉았다. 아이에게 플래시가 있는지 물어봤다. 다시 서랍장을 뒤적이더니 빨간 플래시를 꺼내 줬다. 들어보니 묵직했다. 길을 따라 비추며 내려갈 수 있다. 좀 더 쉬고 가고 싶었지만, 하루 밤을 자기에는 시간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마당을 나서고 아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이도 나에게 인사를 했다. 길을 비추면서 내려가니 눈에 익은 길들이 보였고 아까 차가 걸린 돌이 보였다. 뾰족하게 선 큰 돌이었다. 발로 걷어찼다. 무릎까지 저렸다. 한참을 내려가니 빛이 보여 도착한 곳은 아이가 있는 집이었다. 아무래도 어디서 길을 돌아온 것 같았다. 아이는 헤어졌던 모습 그대로 서있었다. 나는 랜턴을 다시 쥐어줬다. 아이는 집에서 마당 쪽으로 나와 있는 턱에 앉았다. 나도 옆에 앉았다. 목이 칼칼했다. 아이는 캔 음료를 따서 가져다줬다. 

작가의 이전글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