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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ul 19. 2020

토끼

아 이제 그만두자. 한 손으로 끓이는 라면은 아직 무리다. 입에 네모 반듯한 라면을 넣고 부셔먹는다. 불려먹나 부셔먹나 배에 들어가면 똑같지 라는 편한 생각을 하면서 티브이를 켠다. 티브이는 켜지는 순간부터 쉬지 않고 말한다. 그것이 참 신기하다. 어째서 지치 치도 않고 자신에 얼굴을 붉히면서 웃다가 울다가 읊조리다가 소리치다가 어느 순간에는 노래도 부른다. 귀찮게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감정 기복이 조금 심하지만 편한 친구다. 방에 불을 끄니 모든 것들이 검게 사라지고 티브이와 내 얼굴만 떠있다. 그래 네가 나의 달이고 내가 너의 달이다. 달. 달에는 토끼가 산다. 마침 티브이에서 토끼가 나온다. 코를 씰룩거리면서 먹이를 찾는다. 긴 뒷발로 자신의 체중을 앞으로 밀어내며 짧은 앞발이 그 박자를 맞춘다. 나는 학창 시절에 유난히 튀어나온 앞니 때문에 토끼라 놀림받고 했다. 토끼와 같이 뛸 수 없다. 한쪽 팔이 사고로 사라져 뒷발로 멀리 치고 나가도 앞발이 버텨주지 못해 자꾸 넘어진다. 괜히 뛰다 코가 깨지고 눈이 찢어지면 병원비만 든다. 그래서 가만히 집에 있는 중이다. 토끼가 늑대에게 목덜미가 물렸다. 그래 늑대도 먹고살아야지 그게 바로 자연의 섭리니깐. 채널을 돌린다. 연예인, 연예인 가십, 연예인 노출, 연예인 낚시, 연예인 먹방, 연예인 개그, 연예인 뉴스, 연예인 사기, 연예인 도박, 연예인 사업, 연예인 연애, 연예인 애새끼들이랑 개가 나와서 지랄염병. 나도 연예인이 되고 싶다. 외국에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꽤나 유명한 백인이 있던데 혹시 나도 내 사연 팔이를 해서 유명해지지 않을까? 유명해지고 돈 좀 벌면 동정과 재력에 코 낀 여자가 나와 결혼하지 않을까?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착한 것을 증명하는 걸 좋아하니깐. 첫 번째 계획 먼저 책을 쓰자 적당한 출판사를 정해서 책을 내고 난 뒤에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주목받게 되면 누가 봐도 불운한 외모의 인간이 희망찬 메시지를 준다면 모두에게 칭찬받겠지. 아! 잊지 말자 남아 있는 한쪽 팔로만 팔 굽혀 펴기!  불리한 육체의 건강미를 뽐내면 완벽하다. 박수! 맞다 칠 수가 없지. 티브이는 할 말이 떨어졌는지 삐 소리만 낸다. 졸음이 쏟아진다. 오늘따라 왜 없는 팔이 가려운지 모르겠다. 아마 털이 팔이 날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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