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수 Jul 28. 2020

비둘기

횡단보도를 끝자락에 비둘기가 죽어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자동차 바퀴를 피해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만일 자동차가 보도 쪽에 정차를 한다면 반드시 밟힐 것이었다. 나는 혐오스러운 생각을 누르고 시체에 머무려는 시선에 반항하며 길을 건넜다. 다른 사람들 또한 보았는지 보지 않은지 몰라도 최소한 봐서 좋지 않을 것에 관심을 두려고 하지는 않으려 했다.


퇴근 후 배가 고파 치킨을 먹으려고 했는데 낮에 본 비둘기 때문에 입맛이 떨어졌다. 현관문을 여니 강아지가 반겼다. 고개를 숙여 신발을 벗는 참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거실에 불을 켰다. 거실 한 복판에 오줌을 쌌다. 혼자 집에 오래 두면 거실에 오줌을 싼다. 일단 뜨거운 물에 몸을 지지고 싶다. 옷을 벗는데 강아지가 쫓아다니면서 발등을 핥았다. 배가 고픈가 싶어 사료를 그릇에 부어주지만 먹질 않았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틀고 온도를 맞췄다. 발끝부터 정강이까지 담갔을 때 느낌이 뜨겁지 않지만 숨이 답답해지는 딱 좋은 온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자고 싶다' 벨 소리가 울렸다. 아직 이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삼십 분 정도 씻고 나와서 강아지 오줌을 치운 뒤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함께한 친구의 전화다. 학창 시절에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니면서 자주 놀았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서울로 상경해 사회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졌다.


“여보세요.” 목소리는 그때 그대로다. “오랜만이다. 무슨 일이야?” 친구는 형식적인 인사는 각설하고 어제 만났던 것처럼 할 이야기만 했다. “야 경현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경현이라 하면 어머니가 슈퍼마켓을 했었다. 그때는 편의점이 성행할 때가 아니었을 때라 지금은 보기 드문 작은방이 딸린 슈퍼였다. 우리는 몰려다니면서 담배를 피우고 입이 텁텁할 때마다 그 슈퍼에 들러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경현이 어머니는 우리에게는 애정 어린 욕을 하셨고 경현이에게는 등짝을 후려치면서 담배를 끊으라고 하셨다. 누구든지 금방 정이 붙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이제 서른인 나에게는 부모님의 죽음이란 낯설었다. “어 그래? 어쩌다가.” 말이 툭 나왔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횡단보도에서 택시가 급하게 지나가려고 했는데 그걸 못 보셨나 봐.” 비둘기 생각이 났다. 장례식 날짜와 장소를 받고 전화를 끊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맥주를 땄다. 멍하게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채널에서 멈춘 채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42분 티브이 빛 때문에 잠에서 깼다. 유니세프 광고가 나오고 있다. 앙상한 뼈에 가죽이 눌어붙은 아이. 파리가 아이에 눈에 붙어 얼마 남지 않은 수분까지 빨아먹고 있었다. 부드러운 광고음악에 눈이 감기면서 잠에 들었다.


나는 횡단보도에서 건너편을 보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차들 사이 길 건너편에 바닥에 버려진 고깃덩어리가 보였다.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외면한 채 집으로 갔다.


깨어난 후 스스로에게 불만이 생겼다. 출근을 위해 소파에서 일어났다. ‘차가’ 강아지가 거실에다가 오줌을 쌌다 ‘왜 여기다 쌌지?’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면서 강아지에게 인사를 했다. 출근길에 어제 비둘기가 죽어있던 신호등에 도착했다. 밤새 청소부가 치운 것 같다. 검은 흔적만 남아있고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더 이상 그 혐오스러운 시체를 보지 않아도 돼서 안도했다. 횡단보도에 선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경주를 시작하기 전에 말처럼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리고 있다. 핸드폰으로 서로의 눈을 가린 채. 문득 구름 낀 하늘을 보고 생각했다. ‘눈이 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토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