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수 Aug 03. 2020

인어가 사는 집

더 습해지고 있다. 벽지는 배 나온 아저씨처럼 벽과의 사이가 떠 버렸고 장판 밑에 곰팡이들이 자신들의 영역 넓히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몇 주째 장마가 계속되니 반지하에 사는 나로서 도저히 습기를 막을 방도가 없다. 열심히 일하는 선풍기, 마르지 않는 빨래에 계속 바람을 불어 조금의 습기라도 날려버리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나는 그 옆에서 습기에 절어 축축한 방바닥에 누워 있다. 덥고 끈적끈적 한 피부 때문인지 완전히 바닥과 한 몸이다. 고개를 돌려 나와 같이 바닥에 늘어진 지느러미를 본다. 우리 집에 머물러 있는 인어다. 지렁이가 비 오는 날에 흙 밖으로 나오듯이 그런 원리로 지상으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아님 물속에서만 지내다 질려 습해진 지상 세계에 여행을 온 것일 수도 있다. 


폭우를 뚫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슬리퍼에 모래를 끼우고 빌라 계단을 내려왔다. 비린내가 계단에 가득했고 찰방거리는 물소리에 근원을 찾아보니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장구를 치는 인어를 발견했었다. 나는 수(水)어를 모르기에 번역기를 켜고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인어에게 들려주었다. 


"안녕하세요"


인어는 나를 올려다봤다.


"안녕하세요"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다시 물장구를 쳤다. 사실 내가 괜찮지 않다. 집 앞에 인어가 물장구를 치고 놀면 신경 쓰인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지느러미를 피해 살짝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까지 물이 차있었고 신발들을 모두 신발장 위로 올렸다. 창문을 다 열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여름이지만 비를 많이 맞아 식은 몸을 온수로 따뜻하게 데우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자 집 앞에 인어가 다시 신경 쓰이게 됐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지, 인어 전문 업체가 있는지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폰으로 밖을 내다봤다. 찰랑이는 물결과 지느러미가 아직 그곳에 있었다. 문을 살짝 열고 말을 걸어 봤다. 


"저기"


"네?"


"집 앞에 물이 차 있으면 집이 습해져서 물 좀 빼려고 하는데"


"네?"


"잠시 비켜주실 수 있나요?"


"네"


하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어이가 없이 당했지만 일단 무례해 보일까 그냥 뒀다. 현관에 물을 퍼서 밖으로 빼냈다. 한 시간 정도 퍼내고 걸레로 대충 닦아내니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깨끗한 바닥이 됐다. 이제 남은 건 저 인어뿐인데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님 인간과 사는 방식이 달라서인지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평소에 대화를 자주 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니 일단 대화를 통해서 어떤 인어인지 알아낸 후에 마음이 상하지 않게 천천히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셨어요?"


인어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를 돌려 장황한 이야기를 했다. 번역기가 온전히 해석하기 힘들 정도로 긴 이야기를 해서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대강 비가 많이 왔고 충분히 나갈 수 있는 습도이기에 나와서 놀다 보니 물살에 휩쓸려 다니다 이곳까지 왔다는 이야기였다. 이해하긴 힘들었으나 그렇다 하니 그런가 싶었다. 


"언제 집에 돌아가실 생각인가요?"


"언제든지요!"


상황이 더욱 애매하게 됐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있다고 한다. 인어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니 온 방식으로 어떻게든 돌아갈 수 있겠거니 하는 것 같다. 


"제가 데려다 드릴까요?"


안 듣는다. 


"혹시 가고 싶은데 있어요?"


"동물원"


"왜요?"


"동물 보고 싶어요"


 짧게 생각하고 하는 대답은 아닌 것 같았다. 나라도 물속에 들어간다면 나와 다른 생물들을 보면서 신비로움을 느껴보고 싶을 것이다. 마침 집 근처에 작은 동물원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거기까지 데리고 갈 건지가 문제인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빌라 밖을 보니 경비 아저씨가 사용하시는 수레가 보였다. 나는 경비실에 들러 수레를 빌려 인어를 태웠다. 물을 가득 채우고 인어까지 실으니 무게가 꽤나 나가서 출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괜한 짓 인가' 잔뜩 기대에 부푼 인어를 보니 돌아가지 못할 다리를 건넜음을 알고 잔뜩 힘을 준 채 수레를 끌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수근 거림은 팔에서 오는 통증 덕분에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천으로 인해 당일 동물원 개장을 하지 않습니다."


인어는 내가 왜 멀뚱히 서있는지 영문 모를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비가 많이 내려서 동물들이 없어요"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에 사는 인어가 비로 인해 오는 피해의 대해 생각이나 해봤을까? 수레를 잠시 내려놓고 몸짓으로 오늘은 동물을 없다고 설명을 했다. 정확히 이해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이 원하는 동물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시무룩해졌다. 그러던 인어가 내 손목을 잡더니 근처 연못을 가리켰다. 무슨 의미 인지 알겠으나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 손사래를 쳤다.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수레 밖으로 나와 나를 끌고 연못까지 기어 왔다. 끌려서 당도한 연못은 다채로운 색의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인어는 그 상태로 풍덩 빠졌고 나에게 들어 오라 손짓했다. 다시 손사래를 치기 무섭게 나의 손목을 잡아끌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숨이 막혀 몸부림치던 나를 자신의 목 뒤 아가미에 입을 대도록 했다. 천천히 숨을 찾았고 이윽고 컴컴한 어둠 속의 연못을 봤다. 인어는 인간과 다른 감각을 갖고 있기에 이런 물속에서도 움직임이 자유롭다고 배운 적이 있다. 책으로 읽힐 때와 실제로 겪으면서 얻는 느낌은 차원이 달랐다. 입 속에 비린 냄새가 역겨움을 자아내면서 나는 인어를 뿌리치고 연못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연못 밖에서 기다렸지만 인어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늘이 맑은 날에 잠시 나와 그렇게 원하는 동물들을 볼 수 있겠지. 


집으로 돌아와 비린내 나는 집을 청소하고 보일러를 틀어 집안을 건조했다. 비가 그쳐 더웠지만 습한 느낌보다는 훨씬 나았기에 선풍기를 바짝 얼굴에 대고 바람을 쑀다. 


"아"


입을 벌려 소리를 내는 중에 입에서 나온 비늘. 다시 비늘을 입에 넣고 씹어 봤다. '딱딱하다' 근처에 생수통을 집어 들고 입에 가득 물을 부은 다음 비늘을 삼켰다. 

작가의 이전글 비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