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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Aug 09. 2020

내가 너를 제일 잘 알아

토요일 아침 9시에 10시 사이에 그녀가 온다.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대부분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안경을 쓰고 온다.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테라스에 10분 정도 앉아있다가 커피 들고 사라진다. 하루에 두 번 올 때도 있지만 거의 아침에 잠깐 오고 오지 않는다. 오늘도 그녀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늘은 비슷한 차림의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아무래도 어젯밤 같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둘은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더니 그녀의 템포에 맞춰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내가 그녀를 제일 잘 알아.


그녀의 직업은 비서이다. 큰 기업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에서 회장님의 비서일은 맡는 것으로 보인다. 카페에서 급하게 회장님 전화를 받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일부러 엿들은 것은 아니지만 귀가 있으니 들었던 적이 있다. 평소에 필요 이상의 대화를 직원들과 섞지 않는 그녀지만 매주 카페에 오면서 자신의 대한 정보를 흘렸다. 어느 날은 웬일인지 실내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을 봤다. 당연히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근처 독립서점에서 산 책으로 보였다. 심플한 표지에 에세이 그 나이 때의 여자들이 공감할 만한 글들이 가득 적혀 있을 책 내용이 예상됐다. 나는 카운터 안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책의 내용을 훔쳐보려 했으나 생각처럼 되지 않아 마냥 그녀의 안경알 안으로 보이는 글자만 바라봤다. 처음부터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른 단골손님들과 다른 것 없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왔고 그 사람이 들어오면 미리 시킬 음료를 알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무슨 이끌림인지 나는 점차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한 번도 나에게 꾸민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나 점차 그녀에 대한 마음이 커져갔다. 우리의 사랑이 이어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잘 보이려 노력할 테고 머리를 질끈 묶고 씻지도 않은 후줄근한 차림으로 카페에 와서 자신이 일 얘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런 모습에 더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누군가는 완전히 정제된 아이돌의 모습을 사랑하겠지만 나는 솔직한 현재 그녀의 모습이 더 끌린다. 그녀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가 왔다. 나는 용기를 내서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고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 나를 대할 때 말투 특정한 악센트 입술의 움직임 나는 그 위를 가볍게 쓰다듬는 상상을 하다.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날 이후로 그 남자와 같이 오지 않았다. 가끔 그녀도 외로울 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간 내가 있을 자리를 잠시 빌려준다고 생각했다. 꾸미지 않는 차림에도 언제나 그녀는 액세서리를 했다. 반짝이는 큐빅 귀걸이와 은반지 아무래도 항상 끼고 다니는 액세서리로 보인다.


카페가 쉬는 날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던 중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안경도 쓰지 않고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이었다. 나는 낯선 그녀를 알아봤고 나의 모습은 그녀가 알아보리라 생각하고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대답했고 한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을 썼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아, 저 여기 앞에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눈이 커지더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쉬는 날인지 물어봤다. 나는 그렇다 대답하고 어색한 침묵 후에 각자 장을 보고 헤어졌다.


몇 주동안 더 이상 그녀가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사를 갔을 거라 생각됐다. 그래도 한 번은 와서 인사를 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그러던 중 비 오는 주말 오후 우산을 쓴 그녀가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유리 벽에 붙어 지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비슷한 걸음 걸이었지만 무언가 엉성한 듯 보였다.


'진짜 그녀라면 이렇게 그냥 지나갈 리가 없어'


나는 다른 사람이 지나간 것을 착각했으리라 생각하며 속으로 외쳤다. 내가 그녀를 제일 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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