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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May 26. 2022

청소

강박인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습관에 가깝다. 글을 쓰기 전 청소를 한다. 방 안을 쓸고 닦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서랍을 다 열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린다. 옷장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계절 상관없이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혹은 이제는 맞지 않는 옷을 꺼내어 바닥에 쌓는다. 옷은 둘둘 말아 곧장 밖으로 나가 아파트 헌 옷 수거함에 넣는다. 전에 살던 집 계약서, 언제 뽑았는지 모르는 등본 몇 겹으로 찢어 다른 잡다한 것들과 한대 뭉쳐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이러한 과정 없이 글을 쓰려면 자꾸 버려야 하는 것들에 생각이 걸려 있어 몸이 꼬인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행위를 피하기 위해 발동하는 방어기제. 이제는 어떤 명분도 사라진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 내려간다. 어디로 가야 좋은 글인가. 이러한 고민은 손가락이 바삐 움직이면서 사라진다. 이어지는 생각들과 자꾸 샘솟는 단어들이 하나의 글로 바뀔 때 그만큼 버려졌던 공간이 채워지고 충만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 현실이라고 부르는 물질에 공간에서는 나는 자꾸 버린다. 전에는 침대를 사는 것까지 고민을 할 정도로 집 안에 무언가를 두는 게 싫었다. 침낭 하나로 지낼 수 있다 라는 확신. 결국 침대를 산 것은 집에 키우던 강아지 때문이었다. 20kg 나가는 큰 강아지 었기에 침대라는 턱을 두어 자는 공간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책상과 의자 한쌍 행거와 옷 이것들이 내가 가진 필요한 것들이었다. 가스레인지 없이 가스버너를 사용해 그때그때 부탄가스를 갈아주면서 사용했다. 씻을 때는 비누 하나 칫솔과 치약. 치약을 사용하지 않고 칫솔로만 이를 닦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 상쾌함을 포기하기에는 어려웠다. 다시 책상 앞 모니터 주절주절 써지는 글은 언젠가 다 지워질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다. 싸이월드, 페이스북 전에 사용하던 에스엔에스 남아있는 흔적이 없다. 남들이 추억이라며 남기는 것조차 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들뿐. 지금의 나만이 존재하면 된다. 지금 사용하는 인스타그램, 브런치 언젠가 다음 세대 에스엔에스가 나오면 나는 그곳으로 옮겨 갈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남긴 글들은 부끄러워 지워질 테지. 즐겁다. 그렇게 백지로 남는 게. 냉장고에 쌓인 음식들을 모두 먹어치우고 텅텅 비우는 게. 멀쩡한 옷이라도 입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는 게. 쓰인 모든 소모품들을 봉투에 넣고 하루빨리 밖에 내놓는 게. 사용하고 버리고 쌓이면 비우고 결국 내가 통제하는 곳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나를 대표하는 것은 하얗게 두고. 왜 남기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글을 쓸까. 아무래도 흰 배경에 검은 선. 허투루 쓰이는 선 없이 온전히 의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게 강박을 거스르지 않는 것 같다. 습관은 강박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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