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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Aug 08. 2022

오해

10년 만에 돌아온 집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던 서울 살이는 적은 봉급과 나아지지 않는 형편 때문에 접게 되었다. 호기롭게 떠난 만큼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 집으로 돌아온 첫날 부모님과 같이 하는 저녁 식사에서 불편함을 속으로 앓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건설 기술을 잘 배워서 앞으로 살아가는 밑천으로 쓰라고 하셨고 나는 묵묵히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부모님 두 분은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부모님이 키우시는 강아지는 하얀 몰티즈였는데 아버지 품에 안겨 고개를 팔에 기대고 멀뚱히 누워있었다. 그때 천장에서 누군가 뛰는 소리가 났다. '다다다다 쿵 다다다다 쿵'  층에 아이가 살아서 뛰나 보다 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붉게 변하면서 집에 설치된 스피커로 크게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티브이를 봤고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어머니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반년 전에 원래 살던 위층 사람들이 나가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는데 초등학생 아이가 있어서 매일 뛴다고 한다. 몇 번 위층에 올라가서 주의도 주고 사정도 해봤으나 변한 것은 없고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아이가 뛰지 않는데 왜 그러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렇게 반년을 이어온 전쟁이었다. 사실 나는 딱히 거슬리는 게 없었다. 위층에서 뛰는 소리도 어머니가 트는 음악소리도, 이유는 굳게 닫힌 방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방을 벗어날 때는 방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을 갈 때뿐이었다. 화장실 환풍기에는 천장에 박아놓은 박스가 있었다. 쇠로 만든 박스는 어머니가 위층에 담배연기를 올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모래를 담아놓은 그릇에 담배와 향초를 꽂아놓고 불을 붙인 채로 박스에 넣고 박스 문을 닫는다. 매번 화장실에 갈 때 그 박스가 거슬렸다. 샤워를 하기 위해 샤워기 앞에 서면 그 박스가 머리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은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는데 나마저 어머니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면 히스테리가 더 극에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부터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담배나 향냄새가 아닌 썩은 음식 냄새가. 처음에는 청소를 하지 않아서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인 줄 알고 락스로 하수구를 청소했다. 그렇게 해도 잠깐 잠잠해 질뿐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있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화장실 냄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본인이 한 짓이라고 한다. 무엇을 했냐고 물으니 박스 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 놓았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계속 이런 냄새를 맡고 살아야 하냐고 따졌고 어머니는 박스를 비닐과 테이프로 칭칭 감아 냄새를 막겠다고 했다. 다행히 냄새는 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저 박스 안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화학작용들을 상상하니 찝찝했다. 아버지와 나는 일로 인해 두 달 정도 출장을 가게 됐다. 어머니는 자택 근무를 하시기에 강아지와 둘이 집에 있다. 출장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현관부터 역한 냄새가 났다. 급하게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와 강아지는 멀쩡히 집에 있었다. 집안 어디에도 더럽혀져 있는 곳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무슨 냄새인지 물었지만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박스를 뜯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나는 냄새로 생각했다. 하지만 박스 안에 있는 음식물 냄새가 집안을 가득 매울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집 안에 방향제를 뿌리니 역한 냄새는 이상하리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날밤 나는 더운 여름밤이라 에어컨을 켜고 거실에서 잠에 들었다. 새벽시간 천장에서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서 깬 나는 처음으로 위층에 올라가서 항의를 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옆 집에서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짜증이 섞인 표정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세세히 설명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앞집은 며칠째 보이지 않았고 여름이라 휴가를 갔을 거라고 했다. 그럼 천장에서 들리는 소음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복되는 소리 부모님 두 분은 작지 않은 소리에도 깨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화장실 천장을 열었다.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어두운 천장 공간에서 작은 안광들로 빛났다. 핸드폰 플래시를 비추니 수많은 쥐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천장 공간을 열기 위해 올라갔 변기 위에서 떨어졌다. 떨어진 충격으로 숨쉬기가 힘들던 내 위로 수많은 쥐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럽고 혐오스러운 쥐들. 나의 비명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파도처럼 집안으로 쓸려 들어왔다. 깨어난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는 소리를 치며 강아지를 안고 소파 위로 올라갔고 아버지는 빗자루로 쥐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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