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은솔 무제>나는 손의 떨림을 느꼈다. 힘이 없어서 떨리는 느낌이 아니다.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에 떨리는 것이다. 항상 같다. 내가 활동적인 움직임을 할 때는 어떠한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도 나는 그 시선을 느끼지 않는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설거지를 하거나 글을 쓸 때처럼 정적이고 같은 공간에 아무도 없을 때 누군가가 생겨난다. 얼마나 커다란지 장롱을 가득 채울 때도 있고 얼마나 작은지 벽과 서랍장 틈새에서 있을 때도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으나, 언제나 어둠 속에 빛나는 짐승의 눈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런 시선에서 도망 칠 수 없다. 도망친다 해도 언젠간 잡혀 버릴 수밖에 없는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편집자는 내가 언제쯤 글이 마쳐지는지 알고 있다. 언제나 그때를 맞춰서 집을 방문하고 책상 옆에 올려져 있는 원고를 자신이 들고 온 가방에 넣고, 지내는 안부를 묻는다. 나는 언제나 괜찮다고 대답한다.
수척해진 얼굴을 거울에 비칠 때도 문틈 사이에서 내 얼굴을 바라본다. 외롭지는 않다. 나는 그것을 '그'라고 생각하며 약간 이성적인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샤워를 하면서 자위를 할 때 그의 시선을 느낀다. 물소리와 신음 소리고 섞이고 그 소리가 다시 울려 내 귀로 들려온다. 그는 시작부터 끝까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이 못 참을 만큼 팽창하는 감정을 터트릴 때 몇 번이고 자위를 한 적이 있다. 밤이 되면 그는 거대해진다. 아니 그가 거대해지기보다는 그의 눈이 많아져 침대를 제외한 모든 곳에 그의 눈동자가 스며든다.
시간은 예상보다 빠르다. 편집자는 여전히 찾아왔고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녀의 눈에서 자신에게 같은 물음을 해주길 바람을 느꼈다. 나는 그에 맞춰 요즘 어떤지 물어봤다. 그녀는 눈물을 가득 머금고 푹 패인 볼을 움직여 자신이 요즘 스토킹 당한다고 했다. 그다음 따라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말을 토했다.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알지만, 짜증이 났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에 손을 잡아줬다. 그녀는 머금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고 무릎을 꿇고 내 무릎에 얼굴을 박고 흐느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의 머릿결이 많이 상했음을 알았다. 그녀는 얼굴을 들어 나 얼굴을 바라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오늘은 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는 말에 나는 동의를 했고 같이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시선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와 식사를 할 때도 그녀가 와인에 취해 내 침대에서 잠이 들 때도. 나는 코트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전구와 트리로 가득했다. 색색의 포장지로 싸인 선물을 가게마다 전시를 해놨다. 주머니에 손을 꼽고 고개를 숙인 채로 몇 블록 걷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흩트러진 이불이 그녀의 몸이 엉켜져 있는 그 틈 사이에 시선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처럼 그 시선을 손으로 눌러 꺼버리듯 그녀를 깨웠다. 그녀는 아직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채 눈꺼풀을 뜨지 못하고 옷을 챙겨 입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타자기 앞에 앉아 글을 써내려 갔다. 그녀와 있었던 모든 일을 기록했다. 시선은 뒤에서 지긋히 바라봤고 창문 밖에서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이 나의 눈을 자꾸 간지럽혔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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