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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Dec 26. 2016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

책가방  <공간의 온도>

         


책장을 보면 개인의 취향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 집의 책장은 정확히 반으로 나뉜다. 내가 읽는 소설책과 문학잡지, 그리고 동생이 읽는 자기계발서적과 교재들로 구분된다. 동생과 나는 여태 함께 동거하는 자매지만, 책을 고르는 취향은 참 다르다. 서로의 책이 섞일 염려가 없고, 온전히 독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선 좋은 반면, 각기 다른 책 구입해 꽂는 통에 책장이 복작거린다는 단점이 있다.     

 

서로 다른 취향이라 상대에게 책을 권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공간의 온도’는 처음으로 동생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공간의 온도’는 누구에게나 좋을 책이었다. 사실 그런 책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까운 이에게 거리낌 없이 권하고 함께 따뜻해지고 싶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

 ‘공간의 온도’는 그런 온기를 나에게 불어 넣었다.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공간은 온도를 품고 있다     


우리는 보통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곳을 ‘공간’이라고 한다. 텅 비었다는 뜻은 뭔가 일어나고 존재할 수 있는 장소란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고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공간을 채우고 비우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얼마나 많은 공간을 채우고 비우는 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우리가 한때 채웠던 공간은 차곡차곡 기억으로 저장되어 훗날 추억으로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숨어 있기 좋아하던 옷장의 아늑함, 첫사랑과 함께 거닌 돌담길, 엄마의 도마소리가 따뜻하게 배어 있는 부엌, 희망의 꿈을 꾸게 한 침실의 책장, 사랑하는 이와 그리운 것들이 담긴 옛날 사진들이 모두 그렇다. 내가 머물렀던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잊었다 해도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와 순식간에 그 공간으로 나를 침몰시킨다.     



“강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결국

자신의 마음속임을 깨닫게 된다.” (275쪽)    

 

공간을 품는 것은 나를 채우는 것이고,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연인과 헤어진 후 그의 냄새 밴 물건, 함께 했던 장소가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일이 허다한 이유도 그 공간의 한때에 나를 담았기 때문이다.     


“공간은 기억을 품는다.

처음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은 없다.

한 공간에 다양한 기억이 포개질수록

삶은 풍성해진다.” (281쪽)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우리를 성장케 하는 것은 이별 뒤 전해지는 차가움이다. 현실은 늘 차갑고, 기억은 항상 따듯하다. 그러니 기억을 품은 장소는 더없이 뜨겁고 포근한 그리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는 애착으로 수많은 공간을 세우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그게 우리의 삶이다.      


책 또한 공간과 같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작가는 글과 그림을 채운다. 작가가 채운 공간이 독자에게 전해지고, 독자의 감상과 느낌이 그 곳에 덧붙여져 비로소 한권의 책이 완성된다. ‘완성’은 오롯이 나만의 것,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나만의 것이 되었을 때, 그곳은 온기를 품고 나를 기억하게 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제 이 책은 나만의 온도를 품은 공간으로 존재할거란 느낌이 왔다. 온기는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작가의 따스함이 내게 전해졌듯, 나의 온기가 더해진 책은 이어서 책을 읽을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따뜻한 글이 나눠 줄 수 있는 온기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는 따뜻한 글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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