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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Jan 26. 2017

잘 여문 씨앗 하나

책가방  <화요앵담>




하얀 백지에 손 글씨로 꾹꾹 눌러쓴 편지가 도착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펴낸 작가의 편지를 받아 펼치는 감회가 새로웠다. 


흔히 엽편 소설을 손바닥 소설이라고 한다. 단편소설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면 손바닥 소설은 한 눈에 들어오는 짧은 길이다. 분량이 작다고 해서 쉽게 쓰여 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꼭 해야 할 말만 적어야기에 작가는 생각을 곱씹고 글을 압축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에 마음에 차고 넘치는 사연을 다 지우고 사랑하고 보고 싶단 한 마디만 적듯이 말이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갖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 나간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최명희 소설가의 말이다. 무릇 글을 쓴다는 것은 남들은 어찌 볼지 몰라도 써 본 사람들은 구구절절한 아픔을 통감한다. 안영실의 <화요앵담>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어 아렸다. 문단에 등단해 무명의 20년을 보내는 동안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했다.      


“수백만 년 전, 늑대처럼 생긴 동물이 육지에서 바다로 갔다.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없었지만 그 동물은 바다가 너무 좋아서 다시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다.”(85쪽)     


아마 그녀와 우리에게는 ‘글’이란 게, ‘책’이 바다와 같을 것이다. 무슨 대단한 운명을 진 것처럼 손에 쥐고 다시 놓지 못하니 말이다. 이 책 속에는 그녀의 세월과 그간의 추억, 한풀이 같은 고백이 가득 담겨 있다. 

나이가 들어 느끼는 애틋한 가족애와 낡은 앨범 속 이야기들, 그리고 이루지 못해 안타까운 꿈과 여전히 꾸는 것을 멈추지 못한 꿈처럼 우리가 자주 떠올리고 얘기하는 소소한 일상들이다. 내 얘기와 같지만 나와는 조금 다른 일상. 이 책대로라면 라그랑주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천체가 서로 공전하는 사이를 사람과 사람이 엇갈리는 자리,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니 말이다. 책 속에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예전에 보고 겪고 꾸었던 시간들이며, 앞으로 걷고자 하는 미래이다.      

손바닥 소설집이 제법 알려진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수가 매우 귀하다. 어디 책만 그런가? 청산유수처럼 쉬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할 말을 꼭 해야 때와 장소에서만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손바닥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 우리는 이미 정치가들의 뛰어난 언변에 익숙하다.  

    

하지만, 실상 인간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반드시 필요한 곳에 서는 사람들이다.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고 조화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앵두처럼 작지만 단단하게 잘 여문 씨앗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부디 우리나라에서도 작가들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쓰는 글들이, 그리고 작지만 명료한 손바닥소설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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