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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Feb 15. 2017

신문의 창

말, 말, 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커피 생각이 난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졸음을 쫓을 음료로 그만한 것이 없다. 점심을 먹고 난 뒤나 전신이 나른해지는 오후가 되면 또 커피를 찾는다. 다른 차를 즐기는 취미가 없다 보니 그렇게 하루에도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신다. 

나는 그중에서도 다른 것을 첨가하지 않아 원두 자체의 맛이 진한 아메리카노를 선호한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씁쓸한 맛과 코를 뻥 뚫어주는 진한 향이 좋아서다. 대학 시절부터 그 맛을 즐겼으니 벌써 아메리카노와 친구가 된 지도 25년이 흘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속이 쓰리고 손이 떨리는 현상이 반복됐다. 특히 빈속에 마시면 그 증상이 심했는데, 아무래도 카페인 때문인 것 같았다. 하루에 서너잔을 마시니 중독 수준은 아니라고 위안을 하면서도 일단 속이 거북하니 아메리카노를 멀리하게 되었다. 

대안으로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가미해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를 아예 끊을 수는 없으니 나름 우회한 것인데, 요즘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푹 빠졌다. 아메리카노가 강렬하고 거침없는 젊음이라면, 설탕과 우유를 가미한 커피는 부드러움으로 쓴 맛을 덜어 낸 중년 같다. 그 맛이 끌리는 건 내가 본연의 색을 죽이고 주변과 어우러질 나이에 들어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새 보면 남의 나라지만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위태롭고 불안하다. 탄핵의 기로에 서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남 걱정할 때가 아닌 것은 알지만, 연일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인종차별정책과 망언은 들을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나라 분은 측근의 말이라도 들었지만, 그 분은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두 대통령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평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유독 직설과 독설을 많이 뱉는 사람을 보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아둔하거나 미련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쉬운 현대에 자기주장을 강하게 어필하는 거라 하면 할 말 없지만, 그 저변에 깔린 이기심과 편견 때문에 다른 이들이 상처받는 것은 무어라 변명할지 무척 궁금하다.

세상에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렇지만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잠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나는 과연 남의 말을 잘 듣고 있는지.

아기가 태어나 첫 말을 뱉기까지 주변의 무수히 많은 말과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귀를 통해 자주 들었던 그것을 똑같이 따라하면서 아기는 말을 익히고 대화를 튼다. 원래 말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렇게 시작됐고, 또 그런 이유로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 일은 아기 때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평생 누군가와 대화하고 소통하려면 귀를 먼저 열어야 한다. 귀를 열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은 독백에 불과하다. 독백이 아닌 대화를 하려거든 먼저 상대의 말을 잘 듣고 대답을 머릿속에서 정리해라. 그리고 말하는 동안 자신의 목소리만 내지르지 말고 마주한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답변에 귀를 기울여라. 

지금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먼저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일. 그것이 대화를 통한 소통의 기본이고, 상대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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