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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Feb 25. 2017

무 명 지

이제 곧, 봄이다 

이제 곧, 봄이다.     


두터운 외투를 벗지 못했지만, 봄이 다가온 게 느껴진다. 하늘이 손바닥만큼 높아지고, 갓난아기 낯처럼 말갛고, 바다의 물빛이 한층 깊어졌다.     


봄은 어선이 망망대해를 홀로 떠 다녀도 외롭지 않아 보이는 계절이다. 햇볕에 노곤해진 물결이 뱃전을 뭍으로 밀어 줄 거란 믿음이 생기는 계절이다. 또한 어두침침한 흙빛에 생기가 돋고, 헐벗은 대지에 곡식의 새싹이 올라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조금도 요란하지 않게 가만가만 숨소리처럼 다가와 어느새 옆에 멈추는 봄. 소리 없이 스며드는 봄을 보기 위해 우리는 낮게 엎드려야 한다. 앙증맞은 초록 눈을 보려면 무릎을 꿇어야 하고, 대지 아래 소곤거리는 새순의 숨소리를 들으려면 엎드려 한쪽 귀를 갖다 대야 한다.     


그렇게 생명이 내는 소리란 작고 가냘프다. 어미의 뱃속에 안착한 생명의 첫 숨소리를 들으려면 40여일의 시간과 오롯이 그 소리를 향한 집중이 필요하다. 한 생명이 내는 소리는 주변을 에워싼 소음에 비해 너무나 가늘고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첫 숨소리를 잊어버린다. 아기의 첫 숨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했던 그때의 설렘과 무사함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던 안도감은 금세 사라지고, 아기보다 더 크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생명의 첫 숨을 듣기 위해 가슴 졸인 40여일의 기다림과 헐벗은 땅 위에 푸르게 돋은 새순을 보고 탄성을 지른 때가 언제였는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을 다 보낸 것처럼 하찮게 여기지 말자. 한 번 잉태한 마음은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다 자란 싹이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첫 마음은 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제발 그걸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봄은 소리 없이 울며 다가오는 것이다.       

        


입춘단상 (박형진)


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나 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 내리는 

추녀물을 세어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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