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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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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Mar 26. 2017

마음 골목

달의 일상 - 목련

우리 동네엔 골목이 참 많았다. 

좌판이 펼쳐진 한길 양옆으로 수없이 좁고 긴 골목이 이어져 있었다.

여러 개로 갈라져 뻗은 골목 안엔 아이들이 바글거렸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골목 끝과 끝을 몰려다니다

어스름해져야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한길에 사는 나는 친구를 만나려면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다.

된장찌개와 생선 굽는 냄새가 밴 입구를 지나

바지랑대마다 낡은 빨래가 펄럭이는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씩 모여들었다.     


우리는 초인종을 누른 뒤 숨이 가쁠 때까지 달리고

웃자란 앵두와 비파를 한 움큼씩 따 먹었다.

그 곳은 모든 게 먹을 거고 놀 거리였다.    

 




















자라면서 골목이 합쳐지고 넓어졌다

수염이 돋고 젖망울이 오른 아이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골목 입구에서 끝까지 돌아도 아이 한명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그래도 나는 대학을 졸업하도록 골목을 돌아다녔다.

아니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골목과 골목을 걷는다.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에서 나를 반기는 건 계절을 지나는 꽃이다.

동네에서 가장 먼저 봄꽃을 피우는 곳,

가을이 오면 한 해의 열매를 자랑스럽게 매달고 있는 곳,

     

나의 계절은 골목과 골목 사이로 다가와

마음 안에 웅숭깊은 골목을 만들었다.

마음 속 골목은 많이 어두워 자주 헤매게 했다.     


그래도 가끔 골목 사이로 

환한 꽃이 피고 열매가 여물면

내 마음 골목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다.


올봄, 내 골목엔 목련이 가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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