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일상 - 동네빵집
어릴 적 동네에 ‘평화당’이라는 빵집이 있었다.
낡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아담한 가게는 빵맛이 좋아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곳에 들어서면 늘 고민됐다. 수북이 쌓인 빵 더미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도톰하게 부풀어 갈색 윤기가 도는 단팥빵도 탐나고 슈가눈을 뒤집어 쓴 메론빵과 울퉁불퉁 재미있게 생긴 곰보빵도 포기하기 힘들었다.
한참 망설이다 겨우 고르면 빵집 아저씨가 슬쩍 빵 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심부름 잘해서 주는 덤이라고 했다. 나는 빵을 입 안 가득 집어넣고 천천히 녹여 먹었다. 행여 가는 도중에 동생을 만나지 않을까 주변 살피는 것도 잊지 않고.
언제부턴가 동네에 낯선 영어 간판을 내건 빵집들이 하나둘 늘었다. 빵집을 더 이상 빵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그곳은 외양부터 이전 빵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화려했고, 온갖 치장을 한 빵들이 그득했다. 어떤 빵들은 차마 손을 내밀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지만, 꼭 보기 좋은 음식이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사에서 냉동생지를 공급받아 구워내는 프렌차이즈 매장의 빵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손맛을 느낄 수 없었다. 어느 동네를 가도 같은 모양과 비슷한 맛이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만든 사람의 손길이 안 느껴지는 음식은 마음에 닿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구석진 동네를 뒤져 옛날 맛을 찾아 헤맸다.
어쩌면 하루에 몇 백권의 신간이 쏟아지는데, 모든 책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게 아닐까?
빵을 굽는 것과 글을 쓰는 일은 사람의 손과 마음이 연결되는 통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