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고백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중략)
-편 지 (이성복)-
K에게
내 안을 꽉 차게 들어온 편지는 당신이 처음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만나고 제법 친해진 뒤에도
문득문득 당신의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그 날 이후 더는 비슷한 편지를 받지 못했지만
내게는 그 편지가 늘 당신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인가 봅니다.
내가 당신에게 반한 순간이..
처음 웃음을 나눈 자리가 아니라
수줍게 적은 당신의 편지를 받은 날...
처음이란 말은
숨어 있다 불현듯 튀어나와
온 몸을 따뜻하게 데우는 불꽃같습니다.
오늘도 쉽사리 꺼지지 않는 불꽃이
제 안을 발갛게 태워
잠을 달아나게 합니다.
뜨거운 불면의 밤들을 지나면
저도 언젠가 고백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편지가 첫사랑이라는 걸.